해가 바뀔 때는 특별히 더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지는 해와 함께 낡은 자신을 벗어버리고, 떠오르는 해와 함께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결심이지요. 사람마다 자신의 변화를 도모하는 때와 방식이 다릅니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려고 밤 새워 동해안으로 향하거나,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합니다. 오늘의 해는 어제의 해와 다르지 않겠지만, 날과 해의 변화와 함께 우리 몸과 마음도 변할 것이라는 기대, 아니 변화시키고 싶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 결심이 무엇이 되었든 이런 결심의 배후에는 더 이상 이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의,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프랑스 출신 수필가인 도미니크 로로가 쓴 ‘심플하게 산다’입니다. 동양적 단순성의 미학에 빠져 적게 소유할수록 더 자유롭고, 우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일상생활 안에서 실천한 경험과 깨달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집과 물건과 몸과 마음을 심플하게 하면 ‘정신을 가꾸는 데 집중할 수 있고, 의미로 충만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 심플한 삶이란 적게 소유하는 대신 사물의 본질과 핵심으로 통하는 것을 말한다. 심플한 삶은 아름답다. 그 안에는 실로 수많은 경이로움이 숨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을 물건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몸을 감각으로 생기 있게 만들고, 마음을 감정으로 풍요롭게 만들고, 정신을 신념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건에 소유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심플하게 살려면 먼저 가진 것을 버려야 하는데, 이거야말로 가장 심플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심플한 삶이 전혀 심플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요. 돌이켜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는 이유, 가진 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소유를 자신의 정체성과 이미지와 연결시키고, 더 많이 가져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그러나 물질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도 예술도 도덕도 심지어는 자신의 자아, 하나님까지도 탐욕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 지식, 위선, 영혼 없는 예술도 탐욕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늘 책이 문제입니다. 인생을 대부분 책으로 배우고, 지식을 전적으로 책에서 얻는 이른바 ‘먹물’로서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싸놓고 읽지도 않은 책들, 자신의 교양과 지식을 과시하는 책들, 읽었어도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은 책들, 그리고 위대한 작가와 학자들의 저서들 곁에 도저히 같이 꽂혀 있어서는 안 될 제가 쓴 책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지요. 아르헨티나 출신의 위대한 시인 보르헤스도 자기 책은 한 권도 집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해 결심했습니다. 마침 교수생활을 접고 목회 현장으로 가게 되었으니 인생을 이제는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부터 배우기 위해 버리는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도미니크 로로가 말한 것처럼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말 심플하게 사는 법을 실천해야겠다고.
비록 이것이 작심삼일이 된다 할지라도 최소한 삼일에 한 번이라도 버리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불현듯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무엇으로부터도 소유당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요한 3:5)이 되어 있을지 모르지요.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처럼 변화는 우리의 작심만이 아니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바람 같은 성령에 의해서 일어나니까요. 하여 단 삼일이라도 작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채수일 한신대 신학과 교수
[바이블시론-채수일] 작심삼일하는 이들을 위하여
입력 2016-01-14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