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저유가 공포… WTI 한때 30달러 붕괴

입력 2016-01-14 04:00

국제유가가 심리적 한계선인 배럴당 30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중국 경제 둔화에 따른 수요 부족과 달러 강세 등의 영향으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97센트(3.1%) 떨어진 배럴당 30.44달러로 마감했다. 특히 장 마감 30여분 전에 배럴당 29.93달러로 내려앉았다. WTI가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3년 12월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저유가 더 오래 간다”=국제유가가 급락하는 것은 시장을 짓눌러 온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이라는 양대 요인이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당초 배럴당 60달러 이하면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의 셰일석유·가스 업체들이 생각보다 잘 버텨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큰손’들이 기대했던 공급 축소가 일어나지 않지 않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세계 2대 원유수입국으로 2009년 이후 유가 상승세를 촉발시켰던 중국의 경제 감속이 뚜렷해지면서 수요 회복이 난망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달러화 강세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조만간 해제돼 이란이 국제원유 시장에 복귀하는 것도 원유 반등세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이다.

투자은행(IB)과 경제컨설팅 업체들은 잇따라 배럴당 유가가 10달러대도 가능하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영국 최대 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이날 고객들에게 ‘격변의 한 해’와 글로벌 디플레이션 위기에 대비하라면서 안전한 채권을 빼고는 모두 팔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이 은행은 기술적 분석상 북해산 브렌트유는 의미 있는 수준인 배럴당 34.40달러를 깬 이후 하락세를 지속할 것이라면서 유가 바닥을 1999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수준인 배럴당 16달러로 예상했다. JP모건과 스탠다드차타드(SC)는 최근 유가가 일시적이긴 하지만 배럴당 10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는 물론 내년 평균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미만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제 디플레 우려=국제 원유가 하락은 재정파탄에 직면한 산유국 리스크를 높이고 이미 글로벌 수요 약화에 고전하는 세계 경제에 디플레이션 위험을 높인다.

디플레이션이 지속돼 소비자들이 물가 하락을 기대하면서 지출을 줄이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면 저성장에서 헤어날 수 없다. 디플레이션은 유럽 등 많은 선진국에서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국제유가의 폭락으로 직격탄을 맞는 것은 석유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신흥국들이다. 미국 금리인상과 중국 성장둔화로 취약해진 신흥국에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은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 러시아의 재정적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 경제에도 저유가의 장기화는 경고음이다. 우리 경제는 중국과 함께 중동 산유국과 다른 원자재 부국 등 개발도상국이 2대 주요 시장이다. 조선, 건설, 해운, 유화 등 대부분의 한국 주력 업종이 저유가 리스크에 크게 노출돼 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