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깔깔거리며 잘 웃었다. 무슨 얘기든 서로 귀 기울여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딸들과의 대화가 확 줄었다. 한모(46)씨에게는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큰딸과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작은딸이 있다.
지난해 큰딸이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할 때 한씨는 밥상머리에서 성적이나 진로 얘기를 자주 건넸다. 그 뒤로 큰딸의 말수가 줄었다. 얼마 전에야 큰딸로부터 “밥 먹으면서 성적 얘기하는 게 정말 부담스럽고 숨 막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한씨는 이제 딸들에게 말을 건네는 게 어렵다고 했다. 그는 “작은딸이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상 받은 걸 칭찬하고 싶어도 부담이 된다. 아내가 딸들과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친구 얘기를 나누는 걸 볼 때마다 소외된다”고 했다.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는 ‘섬’이다. 가족과의 대화는 자꾸 끊어진다. 아이들과 말을 섞는 시간은 짧아지고, 그나마 주제는 공부와 성적일 때가 많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이렇게 돼도 괜찮은 것일까.
국립국어원이 청소년(초4∼고1) 361명을 상대로 설문 및 심층면접 조사를 했더니 의미심장한 결과가 나왔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자녀의 학습태도, 언어습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얼마나 길게 자주 대화하는지,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 눈높이에 맞춰주는지에 따라 아이들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와의 대화’ 하루 평균 1시간27분
국립국어원이 설문과 심층면접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청소년 언어문화 실태 연구를 위한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들이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27분에 불과하다. 어머니는 2시간9분이다.
대화 주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어머니와의 대화에선 ‘주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39.8%), ‘공부와 학업’(31.2%), ‘취향과 관심사’(16.3%) 등을 다뤘다. 이에 비해 아버지와의 대화는 ‘공부와 학업’(33.5%), ‘취향과 관심사’(23.7%) 등이었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공부, 학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커졌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취향과 관심사’가 1순위 대화 주제였지만 6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일관되게 공부, 학업이 최우선 주제다.
이렇다보니 아버지와의 대화는 중요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아이들은 대화 상대에 따른 대화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어머니를 첫손으로 꼽았다. 이어 친한 친구, 아버지, 친하지 않은 친구 순이었다.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에서도 친한 친구, 어머니 다음에 아버지였다.
아이 욕설은 아버지에게 달렸다
연구팀에 따르면 아버지의 ‘의사소통 방식’이 대화시간은 물론 아이의 욕설 빈도에 큰 영향을 줬다. 아버지와 많은 고민에 대해 숨기지 않고 얘기할수록 대화시간은 길었다. 반면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택할수록 아이의 욕설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
수업에 소극적인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대화가 이뤄지는 때를 ‘식사시간’이라고 꼽았다. 수업 중에 주로 잠을 자는 아이들은 권위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문제 삼았다. 이에 반해 모든 수업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참여하는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대화에 대해 “자유롭고 대화가 잘 통한다”고 답했다.
부모와 대화보다 ‘모바일 채팅’
아이들이 수업시간을 빼고 가장 많이 대화하는 대상은 친구(하루 평균 2시간19분)였다. 선생님은 24분으로 가장 짧았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와의 대화시간이 감소했다. 부모와의 대화에서 말을 하기보다 듣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머니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때 3시간1분이던 대화시간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1시간47분으로 떨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2시간37분으로 길어졌다가 중학교 3학년에선 1시간39분으로 급감했다.
아버지는 더 심각하다. 대화시간이 가장 긴 초등학교 4학년이 1시간56분에 그쳤다. 초등학교 6학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은 1시간20분이다. 또한 아이들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친구와의 채팅 시간이 길었다. 친구와 단둘이 하는 채팅은 하루 평균 1시간33분을 기록했다. 중학교 2학년은 2시간26분으로 가장 길었다. 여럿이서 하는 채팅에 쓰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34분이었다. 학년별로는 중학교 3학년이 1시간48분에 이르렀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단독] 아이가 욕 많이 하고 수업시간에 잔다면… 권위적 아버지와의 대화탓?
입력 2016-01-14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