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집나간 명태, 귀환의 꿈… 현상수배 통해 키운 치어 첫 방류

입력 2016-01-15 04:06
해양수산부와 강원도는 지난달 18일 강원도 고성군 저도어장에서 명태 치어 방류행사를 가졌다. 20㎝ 가까이 자린 명태 치어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방류되고 있다.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 제공
서주영 박사(왼쪽)와 김영길 수산자원센터 소장이 13일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 어류동에서 명태 치어 생산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서 박사가 수조 위에 올라가 명태 치어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요즘같이 칼바람 부는 날씨엔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싱싱한 생태에 아삭한 무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뿌려 시원하게 끓여 낸 생태찌개가 요즘 철에 제격이지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국민생선 ‘명태’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조선 말기 문신인 이유원(1814∼1888)이 쓴 ‘임하필기’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함경도 명천군(明川郡)에 부임한 군수에게 한 어부가 생선을 잡아 올렸고, 이를 맛본 군수가 맛있어 이름을 물었다고 합니다. 이 어부가 모른다고 하자 군수가 명천의 ‘명’자와 어부의 성인 ‘태(太)’자를 따서 ‘명태’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유원은 또 조선 중기 문신인 민정중(1628∼1692)의 말을 빌려 “내가 원산(元山)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여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오강(五江·지금의 한강)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다”라고 전했습니다.

옛 선조들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요. 명태 어획량은 1981년 4만6228t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엔 100t 이하로 떨어지더니 2007년 ‘0’을 기록하면서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 동해안에선 민정중의 말처럼 귀하디귀한 명태자원을 회복하기 위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해양수산부와 강원도, 강릉원주대, 국립수산과학원이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요.

◇명태의 귀환을 꿈꾸다=13일 오전 명태 살리기 시발점인 강원도 고성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를 찾았습니다. 센터에서 만난 김영길 소장은 지난달 저도 북방어장에서 명태를 처음 방류한 뒤 너무나 많은 관심이 쏟아져 몸 둘 바 모를 지경이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또 일본에 비해 5년 정도 명태 연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생산기술은 거의 따라잡은 상황이라 많은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서주영 박사의 안내를 받아 어류동을 찾았습니다. 어류동의 문을 열자 크고 작은 수조 수십여개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대형 수조 안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만큼 자란 물고기 수천마리가 환상적인 군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검고 큰 눈망울에 얼룩 줄무늬 모습을 한 이 물고기들은 동해안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명태 치어’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의 상승, 명태 새끼인 노가리 남획, 중국 쌍끌이 어선의 북한수역 조업 등 여러 가지가 ‘명태 실종’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수조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1만7000여 마리의 치어는 지난 2월 동해안에서 어렵게 구한 어미 명태로부터 받은 알을 수정, 부화시킨 것입니다. 육상 수조에서는 10개월 동안 3만6000여 마리의 명태가 15∼20㎝ 크기로 자랐습니다. 절반가량은 지난달 동해안 저도 북방어장에 방류했습니다. 치어가 방류된 곳은 그동안 명태가 주로 잡힌 곳으로 국내산 명태의 산란과 회유구역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해수부와 강원도는 연구자료 확보를 위해 3000마리를 해상가두리 시설에 추가 방류하고, 나머지 치어는 수조에서 더 키워 수정란 확보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자취를 감춘 물고기 자원을 옛 모습대로 되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 박사는 명태 방류 이후 많은 사람이 프로젝트를 성공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방류의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순 없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명태가 사라진 원인, 서식 환경, 번식 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2월입니다. 프로젝트 추진 한 달 뒤 명태알을 채취해 9만4000마리를 부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물고기가 75일 만에 모두 죽었습니다.

해수부는 살아있는 명태를 잡아오는 어민에게 ‘50만원’을 지급하는 ‘명태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살아있는 명태는 50만원, 죽은 명태는 5만원을 어민들에게 지급했습니다.

현상수배를 통해 구한 명태는 634마리로 그중 알을 채취한 것은 단 2마리에 불과합니다. 이 가운데 1마리는 알을 부화시켰지만 치어가 모두 죽어버렸고, 나머지 1마리에서 치어를 생산하는 데 성공을 거뒀습니다.

방류 성공 여부는 앞으로 4년 뒤 동해안에서 포획한 명태와 어미 명태와의 유전자 대조를 통해 판가름 나게 됩니다.

◇제2의 도루묵 될까=도루묵은 수산자원회복사업의 모범사례로 손꼽힙니다. 겨울철 동해안의 별미인 도루묵은 1970년대 연간 어획량이 2만5000t에 달했지만 무분별한 어획 등으로 인해 1990년대 이후 연간 1000∼2000t으로 어획량이 곤두박질쳤습니다. 강원도는 도루묵 자원을 회복하기 위해 2006년부터 11㎝ 이하의 어린 도루묵의 포획을 금지하고 전국에선 처음으로 어업인 단체와 보호협약을 체결하는 등 자원 회복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2009년부터 6년간 강원도 동해안에서 한 해 평균 3700t 넘는 도루묵이 잡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매년 겨울철마다 동해안 항구나 선착장 방파제 등에서 통발과 뜰채로 도루묵을 쓸어 담는 진풍경을 구경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동해안 어민들과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명태가 제2의 도루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국내 연안 명태 자원을 회복해 수입 대체 효과를 불러오고, 명태 양식기술 확립을 통해 어업인의 소득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태는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지금도 국민이 선호하는 생선입니다. 2014년 명태 수입량이 21만5784t에 이르는 등 국민의 명태 사랑은 여전합니다.

명태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생선입니다. 막 잡아 올리거나 얼리지 않은 ‘생태’를 비롯해 봄에 잡은 ‘춘태’, 가을에 잡은 ‘추태’, 얼린 ‘동태’, 말린 ‘북어’ 등 무려 35가지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무수한 이름에 금처럼 귀하다는 ‘금태(金太)’라는 새로운 이름이 더해졌습니다.

눈알부터 아가미, 내장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아낌없이 주는’ 생선 명태가 ‘금태’라는 이름을 버리고 하루빨리 국민생선으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성=글·사진 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