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멈추어버리면 되니까.”
총 인구 500만 명인 노르웨이에서 2009년 출간 이후 50만부 이상이 팔렸단다. 성인 상당수가 사서 읽은 책이라는 기록만으로도 호기심이 간다. 게다가 첫 문장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래서 덥석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는 의외로 인내가 필요해 보인다.
경장편이 대세인 한국 문단에 66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우선 부담스럽다. 유독 한국에서 대히트를 쳤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가 보여주듯 재미와 속도, 정보를 중시하는 한국 독자의 경향에도 크게 벗어나 있다. 그러나 호흡을 가다듬고 여유를 갖고 읽다보면 마약 같은 중독성이 스멀스멀 솟아난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소설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48·사진)는 이 책에 자신의 삶을 자화상처럼 녹여냈다. 전체 6권 가운데 1권만 번역돼 나왔다. 작가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삶에 대한 기억을 써내려간다. 그 고백의 중심에 죽음이 있다. 계기는 아버지의 죽음이지만 어떤 죽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죽음에 대한 시적이고 산문적인 성찰이 도처에 깔려 있다. 어느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가정을 꾸려가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과거의 기억과 자신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기억이 새끼줄 꼬듯이 엇갈려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주눅 들어 지냈던 소년시절, 술과 담배를 하며 방황하고 반항하던 고교시절, 처음으로 여자와 사랑을 나눈 일 등 성장 소설적 요소도 있다.
소설의 마력은 일상의 세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는 기억의 집요함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형성해온 것들의 비밀을 풀어간다. 디테일이 소설을 밀어가는 힘이다. 책이 인기를 끌면서 노르웨이에서는 ‘크나우스고르하다’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 어떤 일을 너무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뜻이다.
제목 ‘나의 투쟁’은 히틀러의 자서전 제목과 같다. 작가는 이에 대해 “결코 문학적 충격이나 상업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글쓰기 밖에 없다”는 작가가 “글 쓰는 일을 통해 자신을 해부하고 관찰하며 스스로 누구인지 알아보려 한 소설”이라고 번역자 손화수씨는 평한다.
소설은 중산층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작가의 분신이 어수선하고 피곤한 일상과 싸워가며 소설가라는 직업인으로 살아가려는 내적 투쟁을 그린다.
“이건 투쟁이다. 비록 영웅적인 투쟁이라 할 수 없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 치워도 치워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방, 눈을 뜨고 있는 한 한도 끝도 없이 뒤를 따라다니며 돌봐주어야 하는 아이들 등 내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지배적인 것들에 맞서는 투쟁이다.”(53쪽)
노르웨이 소설의 전형이라는 이 책이 한국에서 통할지 궁금하다. 한국 독자 취향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같은 책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나의 투쟁 1] 노르웨이 최고 소설, 한국서도 통할까
입력 2016-01-14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