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금융개혁은 규제완화로 통한다. 정부는 상품, 가격 등과 관련한 규제를 없애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더 많이 나와 금융사 경쟁력이 강화되고 소비자 편익도 증대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업계 위주 금융개혁에 소비자 보호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개혁이 ‘소비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11월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금융개혁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나’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명지대 빈기범 교수는 “금융개혁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빈 교수는 “금융시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자본공여의 핵심인 금융소비자를 잘 보호해야 한다”며 “업계 규제를 풀어주고 문제가 발생하니 소비자 민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보호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험 상품의 전화판매를 예로 들었다. 빈 교수는 “현재 업계의 상품 판로 확대를 위해 전화를 통한 판매가 허용되고 있는데 소비자가 복잡한 보험 상품을 전화통화상 짧은 설명만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업계 편의를 중심에 두고 허용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잦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험표준약관 폐지는 금융개혁 과제 가운데 대표적으로 소비자 보호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는 정책이다. 정부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표준약관과 표준이율 산출 제도를 없앴다. 표준약관은 보험사가 상품을 만들 때 따라야 하는 조건이다. 일정한 틀에 따라 보험이 만들어져 보험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완화가 불가피하다면 소비자를 위해 제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는 13일 “자율 경쟁체제를 만들어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규제완화와 함께 소비자 보호책도 내놓아야 하는데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실행방법과 위반 시 제재 방법 등에 대해 제시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금융사가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 했을 때 제재를 강화하면 금융사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좀 더 신경을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소비자 보호가 첫발을 뗀 만큼 차근차근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원은 “한국의 금융소비자 보호 수준이 낮아 전반적으로 보완해야 하나 한꺼번에 바꾸기는 힘들다”며 “먼저 무엇이 소비자 보호에 어긋나는 것인지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합성 보고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달 16일 ‘소비자보호 규제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금융사는 상품 판매 시 권유 이유와 불이익 가능성 등을 설명하고 이를 보고서로 작성해야 한다. 또 금융상품 판매자의 수수료 체계를 공시하도록 했다.
이 연구원은 “향후 제재 수준도 강화해야겠지만 제재를 위해선 무엇이 소비자 보호에 반하는지 기준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며 “정부는 적합성 보고서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관리해 잘못된 판매와 잘된 판매 사례를 모으고 불완전판매를 가름하는 기준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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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14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