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자신의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정치개혁이라는 ‘변화’를 주문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역설했다. 1년 후면 물러날 오바마 대통령은 7년 전 선거 유세 슬로건이었던 ‘변화’와 ‘희망’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데 총력을 쏟았다. 그러나 국정연설이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을 나열하는 것에 그칠 것이라던 일부의 예상을 깨고, 의회에 정치개혁을 주문하는 한편 관타나모 기지 폐쇄를 추진하고 무상 대학등록금을 관철하겠다고 밝혀 야당인 공화당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그는 특히 “정치인들이 이슬람을 모욕하고, 이슬람사원이 약탈당하면 미국의 안전도 지키지 못한다”고 말해 공화당의 대선 경선주자 중 선두인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 달라져야”=오바마 대통령은 “더 나은 정치를 원한다면 의원이나 대통령을 바꾸는 것에 그쳐선 안 되며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파리테러 이후 이슬람을 공격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종이나 종교를 이유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정치를 배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교도의 미국 입국 전면금지를 주장한 트럼프를 의식한 발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선거구를 제멋대로 그어서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고르는 관행을 끝내야 하며, 일부 소수 가문과 드러나지 않는 이해관계가 선거를 주무르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형사사법개혁과 관타나모 기지 폐쇄를 올해 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반대와 이에 따른 법정 소송으로 집행이 중단된 이민개혁과 무상 대학등록금 등 관철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IS 테러, 미국에 직접 위협 안 돼”=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테러 대응 전략이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지 않고 있으며, 과도하게 대응하지 않는 게 올바른 전략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슬람국가(IS)를 근절하고 추적해서 파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그들은 미국의 국가존립을 위협하지 못한다”며 “미국이 자신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면 단독 작전을 벌이겠지만 국제 사회의 이해가 얽힌 문제는 국제 공조를 통해 다른 나라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간접경고로 해석된 ‘실패한 국가들’에 대한 응징은 미국의 안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주장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며 “국제사회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중국이나 러시아를 찾는 게 아니라 미국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지루하고 따분한 연설”=공화당의 대선 주자들은 국정연설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는 “연설이 정말 느리고 지루하고 따분해서 지켜보기가 힘들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선거유세 일정을 이유로 국정연설에 불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중 64회의 박수를 받았지만 공화, 민주 양당 의원 모두로부터 받은 박수는 5차례에 불과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 뒤 단상에 있던 조 바이든 부통령이 일어나 박수를 치는 동안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59분간 연설했지만 폭넓은 공감대를 얻어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오바마, 트럼프 겨냥 “이슬람 모욕하면 미국도 위험”
입력 2016-01-13 21:15 수정 2016-01-14 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