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딱 맞았다. 먹던 약이 듣지 않자 병원에서는 계속 약을 바꿔가며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모르핀(morphine)을 놔 주기도 했다. 의식이 살아 있어야 심장이 뛰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특히 주치의 아이젠 박사는 나를 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내 상태가 좋지 않으면 퇴근하지 않고 밤새 나를 지켜보곤 했다. 중환자실에서 내 심장의 심한 박동을 멈추게 하는 모든 약물을 다 맞았지만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었다. 병원 의사들의 아침 인사가 “팀이 아직 살아 있어?”였을 만큼 심각했다.
당시 내가 살 확률은 높지 않았다. 심장병 환자의 절반쯤은 병원에서 심장을 기다리다가 숨을 거둔다. 남은 절반은 심장 이식수술을 받은 후 1년 내에 감염 후유증으로 죽는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식수술을 받은 사람도 평균 수명이 10년 남짓이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며 30대 초반인 내가 성공적으로 이식수술을 받는다 해도 10년 정도 더 살 확률은 25%에 불과했다.
한번 입원하면 적어도 6개월은 병원 생활을 하게 된다. 내 생체 조건이 맞는 심장이 그리 빨리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심장을 기다리면서 위급해지면 내 순서가 아니라도 먼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기다린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몸의 상태가 나빠지면 심장이 나와도 이식수술을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심장병동은 살아남기 위해 피 마르는 듯한 고통을 견뎌내며 처절하게 기다려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터이자 남보다 하루라도 먼저 더 좋은 심장을 받기 위해 소리 없이 싸우는 남과의 치열한 전쟁터라고 말한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아 나갈 가망이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심장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런 광경을 지며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만일 내가 기적적으로 살아서 이 병원을 나간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갓 결혼해 새댁인 아내의 충격이 더 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다 보니 아내를 못 알아보는 적도 있었다. 아내는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 주었다. 아내는 어린 아이들을 건사하기도 힘든데 병석에 누운 남편까지 돌봐야 했다. 그러기를 2년여가 흘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살고 싶었다. 꼭 살아서 이 심장병동을 나가고 싶었다.
내가 성경 말씀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이식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다.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병원은 내게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나는 의식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에 성경을 읽었다. 그때는 하나님과 나, 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기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온 나를 계속 깨워가셨다. 구원받은 사람은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구원은 선물로 주셨지만 받은 사람은 그 선물을 수평적으로 사람들에게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됐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하형록 <10> 심장이식 기다리다 생명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아
입력 2016-01-14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