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북핵 악순환 고리 끊어야

입력 2016-01-13 18:17

‘출생과 죽음은 피할 수 없으므로 그 사이를 즐겨라.’ 아직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페인 출신 미국 철학자이자 시인, 평론가였던 조지 산타야나(1863∼1952)의 명언이다. 그의 명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해야 하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과거 잘못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는 참으로 섬뜩한 말이다.

요즘 한반도 상황을 보면 이 말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13년 4월 필자는 ‘북한 관리 제대로 해야’라는 글을 썼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지 한 달여 지났을 때였다. 북한 핵 야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위기조성과 협상전략에 얄미울 정도로 노련한 북한에 비해 위기관리능력이 약한 정부의 모습이 불안하다고 했다. 당시 글을 그대로 옮겨놓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북한발 위기로 한반도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당시도 북한은 국제적인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을 했다. 한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북한 제재안을 내놓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막지 못했으니 이런 방안은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핵무기 보유를 향한 자신들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북한 핵 개발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핵실험 실시→국제사회의 으름장→보다 진전된 핵실험 실시→국제사회의 으름장이라는 악순환만 거듭되고 있어서다. 북한 속내를 알고 확실히 제동을 건 경우가 별로 없었다.

1994년 북·미 간 체결된 북핵 문제에 대한 제네바합의는 북한의 승리였다. 미 뉴욕타임스는 그해 10월 23일자에서 북핵 협상을 ‘김정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핵프로그램 동결 약속만으로 평양은 전력공급을 위한 경수로 건설과 대북 제재조치 일부 완화를 얻어냈다. 하지만 북한은 핵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았다. 국제 감시를 받게 되는 플루토늄을 원료로 한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고농축우라늄을 원료로 하는 핵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제네바합의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개발이 드러나자 무효화됐다. 그로 인해 북한이 타격을 입었는가. 그렇지 않다. 동결했던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수조에 보관됐던 연료봉을 재처리해 핵무기 3∼4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25㎏을 추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6자회담 형태로 2차 북핵 협상이 시작됐지만 시간만 끌었을 뿐 성과는 없었다. 그간 북한은 4차례 핵실험을 하면서 핵 고도화를 착착 진행시켰다. 원로 정치학자 강성학 박사는 저서 ‘전쟁신(神)과 군사전략’에서 핵과 관련해 “북한은 잃은 것이 거의 없다”고 규정했다.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의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해야 했다. 북핵 문제를 오래 다뤄온 한 관리는 사석에서 “그릇된 판단에 기초한 정책은 숙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차 북핵위기 시부터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의도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북한은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대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핵 보유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을 찾아내 북핵 악순환 고리를 이번에는 끊어야 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