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오신김에 검사 하나 하시죠”… 신뢰 깨는 의료진의 말

입력 2016-01-17 18:32
60세 홍 씨는 얼마 전 대장의 삼분의 일을 잘라냈다. 잘라낸 부위에서 암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의 일부를 잘라낸 탓이 본래 대장의 기능은 저하됐다. 장의 길이가 짧아졌기 때문에 방귀를 뀌어대는 횟수가 잦아졌고 잦은 변의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 그러나 ‘환자복’을 벗는 순간 그는 더할 나위 없는 자유를 느꼈다. 답답하고 지루한 병실 생활, 온갖 수액줄로 퉁퉁 부은 손등, 주삿바늘을 더 이상 꽂을 때가 없어 발가락에 놓는 상황을 견뎌온 그는 환자복을 벗고 병실을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 메마른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그렇게 그는 암환자에서 벗어났다.

홍 씨는 자신을 수술해준 의사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위급했던 그의 몸상태는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건강을 회복할수록 이 모든 게 의료진 덕분 같다. 그날은 홍 씨가 수술 후 세달여 만에 주치의를 다시 만난 날이다. 그날 주치의는 대장을 일부 떼어낸 홍 씨에게 위 내시경검사를 권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추적관찰이라면 위가 아닌 대장내시경을 받아야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상했지만 홍 씨는 주치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아팠던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따로 없다. “당신 위 내시경 받아야 해”라고 하면 아픈 사람은 여지없이 의사의 말을 따르게 된다.

위 내시경을 받기로 한 날 홍 씨는 주치의와의 약속대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위 내시경을 받아야할 대상자 목록에 홍 씨의 이름은 없었다. 예약이 안 되었나 싶어 주치의를 찾았다. 주치의는 애당초 홍 씨에게 위 내시경 검사를 오더내린 적이 없다며 이참에 췌장 초음파검사를 해보잔 얘기를 꺼냈다. 홍 씨는 황당했다. 고가의 검사는 아니지만 환자의 건강에는 별 관심이 없는 말투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에게 “검사 당 인센티브가 붙는다고 하던데 설마 이게 그런 상황인가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많은 암 생존자들이 추적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다. 재발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건강한 일반인보다 받는 검사의 수가 많고 그 간격이 짧다. 환자였기에 질병발생 위험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검사하자’는 의사의 말에 환자 대부분이 수긍한다. 정석대로라면 왜 이 검사를 받는지,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 검사인지 의사와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추가검사가 필요합니다” 식의 단출한 대화는 불필요한 검사를 받는 것은 아닌지 환자 스스로 의문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주치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앞서 사례에서도 대장서 용종을 떼어낸 사람에게 위 내시경을 권하고 췌장 초음파 검사를 권했다. 주치의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내린 의학적 판단일 수 있지만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의사와의 면담은 단순히 다음 검사 날짜를 잡는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 애썼다”는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격려를 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