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4일 새벽 2시쯤. 소변을 보러 서울 영등포구 노들길 근처에 차를 세운 택시기사가 하수구 근처에서 서모(여·당시 23세)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알몸이던 서씨 목에는 끈에 졸린 흔적이 선명했다. 팔에는 테이프로 감긴 자국이 있었다. 일명 ‘노들길 살인사건’의 증거는 이것뿐이었다. 10년째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미제 살인사건은 늘 공소시효 논란을 일으켰다. 공소시효를 넘기면 ‘완전범죄’가 됐는데, 지난해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273건의 미제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사라졌다.
경찰청은 지난해 9월 미제 살인사건을 모두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났다. 미제 살인범의 흔적이라도 잡았을까. 일선 현장은 여전한 인원 부족과 허울뿐인 ‘전담’ 체제 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전담수사팀에 배치된 ‘베테랑’ 형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단서들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인원 부족한데 ‘말뿐인 전담’
국민일보 취재팀이 각 지방경찰청을 전수조사한 결과 서울과 부산, 경기를 제외한 13개 지방청에 배치된 미제사건 전담수사팀 인력은 2∼4명 수준이었다. 경기경찰청의 경우 형사 7명이 미제사건 45건을 담당하고 있다. 충북경찰청과 경북경찰청은 각각 2명이 미제사건 15건을 처리하고 있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미제사건 3건이 있지만 수사팀은 0명이라고 했다. 반면 경찰청은 제주경찰청에 2명의 전담 형사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한 경찰관은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 하나만 파기에도 부족한데 여러 개를 동시에 맡다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언론 등에 나와 유명해진 사건부터 하자는 분위기까지 있다”고 전했다.
최근 5년간의 발생 건수를 감안해 배치한다는 기준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 미제 살인사건이 16건인 강원경찰청과 15건인 충북경찰청의 전담인력은 각각 3명과 2명이다. 강원경찰청은 증원 계획이 없고, 충북경찰청은 올해 1명을 충원할 예정이다. 반면 미제사건이 9건인 대구경찰청은 현재 2명인 전담팀을 상반기 안에 5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전담 체제’는 말뿐인 경우가 많았다. 미제사건 전담인데도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종종 차출된다. 한 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전담수사팀 사무실이 강력계와 분리돼 있긴 하지만 강력팀 업무를 같이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명백한 살인사건만 처리?
인원 부족으로 혼선을 빚다보니 살인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은 사건은 ‘변사’로 처리돼 전담팀과 일선 경찰서가 서로 떠넘기는 일도 벌어진다. 2013년 2월 20일 발생한 충북 보은 ‘콩나물밥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 음식점에서 콩나물밥을 지어먹은 6명이 심한 구토와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진 뒤 1명이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콩나물밥에 들어간 양념간장에서 맹독성 농약 ‘메소밀(methomyl)’을 검출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경북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에서 발견된 그 농약이다. 경찰은 조리 과정에 들어간 성분의 유통 경로까지 추적했지만 단서가 나오지 않아 미궁에 빠졌다.
이 사건은 현재 충북경찰청이 아닌 보은경찰서에서 맡고 있다. 살인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보은경찰서 관계자는 “모든 걸 다 해봤지만 증거가 없어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충북경찰청은 “명백한 살인사건이 아니라서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경찰청은 “사건 발생 5년이 지나지 않아 일선 경찰서가 맡는 게 맞다”고 해명했지만 혼선을 빚기는 마찬가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명확한 기준 없이 미제 살인사건 처리에 접근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라며 “전담수사팀 형사들이 각 미제사건을 내 사건이라고 인식하고 해결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 넉달] “미제 사건 모두 해결” 경찰 큰소리… 현장선 큰 한숨
입력 2016-01-13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