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여파로 금지된 관피아(관료+마피아) 낙하산 관행이 해당 공무원이 속하지 않은 부처 산하 기관·협회로의 ‘돌려막기’로 변질되고 있다. 퇴직 공무원들이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로 취업이 제한된 자기 부처 산하 기관·협회 대신 타 부처 산하 기관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스와핑 낙하산’이 횡행하고 있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동서발전은 지난달부터 진행한 사장 공모의 후보를 3명으로 압축했다. 최종 후보는 김용진 지역발전위원회 지역발전기획단장과 박현철 동서발전 전략경영본부장, 이석구 동서발전 기술안전본부장이다. 이 중 김 단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사회예산심의관으로 일하다 지역발전위원회로 파견 나온 인사로, 발전업계에는 문외한이라는 평이다. 비전문가를 최종 후보로 올린 것은 청와대가 사실상 김 단장을 사장으로 내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김 단장이 사장으로 취임하면 산업통상자원부나 발전업계 밖의 인사가 사장 자리에 오르는 첫 사례가 된다.
김 단장이 기재부 관련 기관이 아닌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동서발전 사장 자리에 지원한 것은 이른바 ‘관피아방지법’ 때문이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이 퇴직 전 5년 동안 일했던 업무와 밀접한 관련 있는 기관의 취업을 3년 동안 못 하게 하는 등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부 출신 공무원은 사실상 동서발전 사장직 공모가 차단된 상황이다.
이런 행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지난해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결과를 보면 같은 해 3월 말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된 후 공무원 10여명이 타 부처 산하 기관·협회 임원으로 취임했다. 황문연 전 기획재정부 미래기획위원회 단장은 금융결제원 감사로, 강준오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와 백복수 전 감사교육원(감사원 소속) 교육운영부장은 각각 직접적 연관이 없는 한국화재보험협회 상무이사와 NH투자증권 상근감사위원이 됐다.
노골적인 ‘부처 간 스와핑’ 사례도 발생했다. 금융위원회와 관련이 있는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9월 김준호 전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장을 제3대 자율규제위원장에 선임했다. 이에 앞서 김정각 전 금융위 중소서민금융정책관은 6월 미래부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으로 옮겼다. 사실상 미래부와 금융위가 자리를 하나씩 맞바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금융위가 미래부 1급 퇴직 공무원 자리를 챙겨주는 대가로 미래부의 다른 자리를 보장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해당 기관과 협회는 반발하고 있다. 박영주 동서발전 노조 위원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다른 부처 산하기관까지 장악하고 있다”면서 “청와대는 지난해 공공기관 정상화를 천명하고는 임원은 낙하산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여론에 밀려 성급하게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면서 공무원이 전문성과 관련 없는 기관으로 가는 부작용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며 “전문성 없는 인사가 산하 기관으로 가는 것을 제한하되 부처와 기관의 유착을 막을 수 있는 정밀한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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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자리’ 맞바꾸는 그들… ‘관피아 방지법’ 피해 다른 부처 산하기관으로
입력 2016-01-1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