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넘게 직업병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던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처음으로 ‘재해예방대책’ 합의문을 들고 나란히 섰다. 재해예방대책 이외에 보상과 사과 문제 등 2가지 의제가 남았지만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반올림 등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의 교섭 3주체가 합의를 이뤄낸 것으로 협상이 사실상 종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옴부즈맨 위원회’ 역할은=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등 직업병 관련 조정 3주체인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은 12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재해예방 대책에 관한 조정합의문에 최종 서명했다. 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지형 변호사(전 대법관)는 “조정합의가 3주체의 완전한 동의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 여성 근로자 황유미씨의 급성 백혈병 진단 이후 약 8년10개월 만이다.
합의문에는 ‘전문가 옴부즈맨 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세부 계획이 포함됐다. 조정위는 공익기구가 담당하는 옴부즈맨을 도입해 관련 문제를 전담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조정 3주체가 이에 모두 동의했다. 서울대학교 이철수 법과대학 교수가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옴부즈맨 위원회는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제기된 건강과 안전 문제에 관한 조사·제언 등을 수행하게 된다. 2016년부터 3년간 활동에 들어가며, 3년 범위 안에서 활동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제반 비용은 삼성전자 측이 부담하게 된다. 이밖에도 삼성전자는 ‘건강지킴이센터’를 신설 운영하는 등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을 강화키로 했다.
◇대화를 통한 첫 합의로 ‘사실상 종결’ 국면=당초 조정위는 사과와 보상, 대책을 3가지 의제로 설정했다. 이번 합의문은 이 중 대책에 관한 부분이고, 나머지 사과와 보상은 서로 의견이 갈린다.
삼성전자와 가대위 측은 재해대책 합의문 서명으로 사실상 직업병 관련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이미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이고, 보상 당사자들에게 권오현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도 발송했기 때문이다. 권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에는 ‘발병자와 가족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한 부분이 있었으며,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 교섭 대표단장인 백수현 전무는 “오랫동안 묵어왔던 이 문제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른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모든 당사자가 합의 정신을 잘 이행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대위는 반올림 교섭단 8명 중 피해자·가족 등 6명이 따로 나와 구성된 기구다. ‘보상 우선·당사자 직접 협상’ 원칙을 내세우며 보상위원회를 통해 절차를 밟아왔다. 보상위에는 이미 150여명의 피해자들이 보상을 신청해 절차를 마무리했다. 가대위 송창호 대표는 “이미 보상이 사과와 함께 진행된 만큼 이번 합의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반면 직업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이자 반올림 교섭단 대표인 황상기씨는 서명을 마친 뒤 “나머지 의제에 대해 대화로 풀어갈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정위는 일단 향후 3주체가 조정 절차를 계속해 나갈지, 또 어떤 전제조건을 갖고 조정에 임할 것인지 등에 관해 의견을 듣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가대위 측은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어서 조정위를 통한 향후 절차를 밟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8년여만에… 삼성전자 ‘백혈병 분쟁’ 합의
입력 2016-01-12 21:07 수정 2016-01-13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