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실빈맥 증상이 앞으로 얼마나 빨리 심각해질지 모르므로 당장은 아니더라도 가능한 빨리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심장전문의 아이젠 박사는 정확하고 냉정하게 내가 처한 현실을 설명해 주었다. 이후로 나는 내 몸 안에서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 전쟁을 시작했다. 아이젠 박사는 먼저 심장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수술을 했다. 임시방편으로 심박조율기(pacemaker)를 몸 안에 넣는 수술을 해 주면서 제세동기(defibrillator)란 보조기구를 또 하나 넣어 주었다. 심박조율기는 심장박동이 멈출 때 인위적으로 심장에 자극을 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장치이다. 제세동기는 빨리 뛰는 심장의 박동 속도를 늦춰 주는 장치다.
출근과 입원을 번갈아 가며 제세동기를 몸에 넣는 수술을 받고 퇴원하기까지 6개월가량이 흘렀다. 당분간은 기계에 의지해 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퇴원 수속을 하고 나오는데 또다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도무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심장이 빨리 뛰자 제세동기가 강한 전기충격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장박동 속도는 도무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숨을 조여 오는 빠른 심장박동과 마치 심장을 터뜨릴 것처럼 강하게 충격을 가하는 제세동기의 압력을 동시에 받으면서 ‘이제 정말 죽는구나’ 하는 강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었고, 그 길로 다시 응급실로 돌아가 기계를 점검했다.
아이젠 박사는 기계가 내 몸에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 기계를 바꾸는 재수술을 했다. 그렇게 입원을 한 채로 다시 두 달을 더 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 후 퇴원을 했지만 심실빈맥 증상은 계속됐다. 아니 점점 그 빈도가 잦아져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심한 박동을 멈추지 않는 심장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내몰리곤 했다. 아이젠 박사가 전기절제술을 이용해서 위험을 제거했지만 하나를 없애면 또 다른 곳에 문제가 생겨났고 거의 24시간 진정제를 맞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나의 심장은 통제불능 상태까지 갔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식수술만은 피하고 싶어서 나는 그때부터 약물에 의지해 1년여를 버텼다. 그러나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이젠 박사로부터 “이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입원하라”는 통고를 받았다. 이식수술 외에는 살아날 가망이 없는 지경까지 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30대의 전도유망한 나이에 병원 침대에 누워서 남의 심장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참 암울하고 암담했다. 나의 상징이던 빛나는 당당함과 강인한 의지, 그리고 불굴의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심장이 적당한 속도로 뛰지 않는 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겨우 두 살과 세 살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이 생길 줄 모르고 큰 집을 산 지 얼마 안 된 때라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지만 불경기라 임자가 선뜻 나서지 않았다.
나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으니 앉아도 힘들고 누워도 힘들고 고문 중에 그런 고문이 없었다. 한 번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 고통도 고통이지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덮쳐왔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하형록 <9> 앞만 보고 질주하던 삶에 제동을 건 ‘심실빈맥’
입력 2016-01-13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