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돼지농가 구제역… 전북 ‘청정지역’ 무너졌다

입력 2016-01-12 19:18
방역 관계자들이 12일 구제역이 발생한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돼지농장에서 트럭에 싣고 온 방역물품을 내리고 있다. 검은색 천막으로 가려진 농장 안에서는 포클레인이 동원돼 살처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한 돼지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전북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1945년 광복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전북은 전남·제주와 더불어 ‘구제역 청정구역’이었으나 그 명성을 잃게 됐다. 방역 당국은 당혹감 속에서 구제역이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방역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발병 농가 돼지 모두 매몰 처분=전북도는 12일 “전날 구제역이 의심된 김제의 돼지를 검사한 결과 양성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북도는 “전날 돼지 30여 마리의 콧등과 발굽에서 수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밀 검사를 의뢰한 결과 이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도는 이 농가의 돼지 670마리를 살처분하고 인근 3㎞ 내 농가의 돼지 8만2000여 마리와 소 2000여 마리에 대해 이동제한 조치를 내렸다. 또 인근 지역에 거점 소독시설과 이동통제 초소를 설치하고 인근 농가에 대한 방역작업을 강화했다.

방역 당국은 더불어 김제 지역에서 사육 중인 돼지 25만5000여 마리에 추가 긴급 접종을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확산 가능성이 보이면 축산 관련 차량의 이동을 전면 금지하는 ‘일시 정지(Standing Still) 조치’를 전북과 충남에 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발병 농장의 돼지들은 계열사인 충남의 한 농장에서 지난해 10월 26일과 11월 10일 입식된 것으로 전해졌다. 방역 당국은 특히 지난 8일과 11일 충남 농장 관리인이 발병 농장을 비롯해 김제 지역 농장 3곳과 익산 왕궁의 한 돼지농장을 방문했던 사실을 확인하고, 이번 구제역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 왕궁은 전북 지역 최대 양돈 사육지역이어서 주변으로 확산되면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긴급 관련 상황회의를 주재하고 ‘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경계’ 단계에 준하는 철저한 방역 조치를 취하고, 백신 수급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상황 점검을 철저히 할 것 등을 지시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농가들 불안=12일 오후 1시쯤 둘러본 김제 용지면은 겨울 찬바람 속 긴장감이 돌았다. 전북 지역에서 최초로 구제역이 발생한 이 마을은 주민들의 통행이 거의 보이지 않고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만이 통행을 막았다.

용지면사무소 한 직원은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농가들 피해가 더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라며 “어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각 농가에 알리고 모임이나 행사 등을 잠시 미루도록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이 발병한 농가로부터 500m 이내에는 11농가에서 돼지 7460마리와 소 181마리를 키우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는 달리 구제역에서는 인근 농장에 대한 ‘무작정 살처분’은 없어 농가들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지만, 확산 우려 때문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발병 농가에서 8㎞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국립축산과학원도 긴장감에 휩싸였다. 소와 돼지 410마리 등 각종 가축으로 생명과학과 사양관리를 연구하고 있는 축산과학원은 구제역 전입을 우려해 주변 소독을 강화하고 외부인 출입을 막고 있다.

구제역은 돼지와 소, 양, 염소 등과 같이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급성 가축전염병이다. 사람에게 전염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2014년 12월 3일 충북 진천에서 발생, 지난해 7월 1일 종식을 선언할 때까지 전국에서 185건이 발생, 17만3000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그러나 전북과 전남·제주 지역에서는 지난 71년간 구제역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김제=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