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비아그라 팔려고 전화한 곳이 경찰 ‘들통’

입력 2016-01-12 20:43
“좋은 약이 있는데요.” 지난해 6월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임진규 경사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치료제를 싸게 판다는 광고 전화였다. 발신자는 “전에 주문하신 내역이 있기에 전화했다”고 말했다.

임 경사는 2014년 인터넷 광고를 보고 가짜 최음제와 비아그라를 구매한 적이 있다. 수사를 위한 ‘위장거래’였다. 이를 통해 불법 유통업자들을 검거했는데 그때 구매기록이 다른 업자에게 넘어간 것이었다.

다시 ‘위장거래’가 시작됐다. 임 경사는 비아그라 2정, 시알리스 2정, 최음제 등으로 구성된 10만원짜리 발기부전 치료세트를 주문했다. 수사를 위해 주문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볼까봐 집 주소를 불러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지인의 사무실로 물건을 보내라고 했다.

배송된 박스를 여는 순간 수사가 시작됐다. 처방전 없이 비아그라를 판매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배송된 제품은 모두 불법으로 제조·유통된 거였다. 임 경사는 통화 목록, 택배 송장, 통장 거래내역 등을 확인해 ‘출발선’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제품에 묻은 지문도 감정했다.

택배가 출발한 곳은 경기도 일산의 오피스텔이었다. 이모(55·여)씨는 이곳에 콜센터를 차리고 불법 의약품을 팔고 있었다. 이씨 책상에 놓여 있던 A4 용지에는 인터넷으로 비아그라를 구매했던 500여명의 이름, 연락처, 배송주소 등 개인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임 경사도 그 500여명 중 하나였다.

이씨에게 물건을 공급한 곳은 인쇄업체로 위장한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이었다. 공급책 손모(69)씨 사무실에는 불법 의약품 1만5000정이 쌓여 있었다. 손씨는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이 정품보다 3∼5배 함유된 노란색 알약을 ‘황금 비아그라’라며 팔고 있었다. 실데나필 성분을 다량 복용하면 심혈관계에 큰 부작용을 일으킨다. 항진균제인 ‘디플루칸’을 불법 제조해 여성용 성욕 촉진제라고 속여 팔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산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시중에 불법 유통해 15억원을 챙긴 혐의(상표법 위반 등)로 손씨 등 5명을 구속하고 이씨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