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좀비기업 만들어 기업 지도 살펴야”… 이헌재 前 부총리 쓴소리

입력 2016-01-12 20:40

이헌재(사진) 전 경제부총리가 12일 “정부가 좀비기업을 만들고 있다”며 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전 부총리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초대 금융감독원장을 맡아 기업·금융시장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이 전 부총리는 이날 회계·컨설팅법인 EY한영 주최로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6년 경제전망 및 저성장 극복방안’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정부의 산업정책이 좀비기업을 만들고 다른 경쟁력 있는 업체의 경쟁력까지 갉아먹도록 해 이들 역시 좀비기업으로 변하게 한다”며 “더 이상 정부가 산업 지도를 놓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기업 지도를 놓고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성장통을 앓는 과정을 피하다보니 자라지도 못하고 늙어버린 아이와 같다”며 “내 임기 중 구조조정을 피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정부와 채권 금융기관이 두려워하지 말고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부실기업을) 정리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주도 성장에 대한 회의감도 드러냈다. 이 전 부총리는 “최근 눈꼴사나운 현상은 재벌이 정부가 주는 특권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을 통해 생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면세점 뺏기 경쟁에 목숨 거는 재벌을 보면 재벌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지탱하리라는 기대를 확실히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또 “기업들이 장기적이고 진지한 전략 없이 당장 살아남기 위한 임시변통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도 했다.

빚을 늘려 부동산시장을 부양한 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가처분소득의 지속 성장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대출로 내수 경기를 지탱하려는 성장전략은 금융리스크만 키울 것”이라며 “분양 시장이 과열됐다가 입주 시점에 물량 과잉으로 집값이 하락하면 미입주 주택이 늘면서 사회적 문제로 돌변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