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2일 탈당했다. 그는 6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던 당을 떠나면서 “양심과 확신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었다.
권 고문은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연 뒤 “저는 60여년 정치인생에서 처음으로 몸담았던 당을 스스로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 고문은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다. 1961년 목포상고 선배인 DJ가 강원도 인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자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55년간 당을 지켰다. DJ가 고초를 겪던 군사정부 시절에도,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인자’로 몰려 불명예 퇴진할 때도 당을 떠난 적은 없었다. 그는 평소 “죽으면 비석에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고 새겨주면 영광”이라고 했고, 지난해 펴낸 회고록의 제목은 ‘순명(順命·천명에 순종하다)’이었다. DJ 부인 이희호 여사는 “권 고문은 비서를 넘어 동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당을 떠났다.
권 고문은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했다. 통합을 강조한 DJ의 생전 발언을 언급하면서는 “저는 이 유지를 받들어 통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2012년 대선과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더민주 문재인 대표를 지원해온 사례도 들었다. 그러면서 당을 떠나는 이유도 문 대표를 위시한 당 지도부 때문이라는 점을 못 박았다. 그는 “당 지도부의 꽉 막힌 폐쇄적 운영 방식과 배타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어왔지만 정작 우리 당의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권 고문은 야권 재편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미워서 떠나는 건 아니다. 연이은 선거 패배에도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 너그러운 화합과 포용을 이루지 못하는 정당, 정권교체의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한 정당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제대로 된 야당을 부활시키고 정권교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미력이나마 혼신의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권 고문은 신당 세력의 통합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민주는 충격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호남 출신 한 당직자는 “당을 지켜온 뿌리가 뽑혀나간 것”이라고 했고, 권 고문과 가까운 이윤석 의원(전남 무안·신안)은 “당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 떠나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심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민주는 권 고문의 탈당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시각에 맞불이라도 놓듯 외부인사 영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 대표도 참석했다.
중립 성향 당직자 사이에서도 “당 원로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주류 측 인사들의 그릇 크기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문 대표는 권 고문 탈당에 대해 “아프다”고 했지만 ‘당의 입’인 김성수 대변인은 “분열의 길을 선택한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브리핑했다. 권 고문 등 동교동계가 떨어져나가면서 제1야당 ‘적통’ 논쟁이 불가피해졌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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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12 21:27 수정 2016-01-13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