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유통법 개정령 낮잠 자고 있는 사이… 사기·탈세 ‘먹튀 석유대리점’ 활개

입력 2016-01-13 04:00

석유유통업자 조모(34)씨는 지난해 2월 허위 세금계산서를 유통한 혐의로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다. 조씨는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주는 유령 석유대리점을 통해 가짜로 경유 등을 구입한 것처럼 꾸며 총 79억원에 달하는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았고, 이를 세무서에 신고해 10%의 환급금도 챙겼다.

12일 석유업계에 따르면 탈세를 목적으로 한 유령 석유대리점이 난립하면서 석유유통 구조가 혼탁해지고 선량한 사업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대리점은 정유사, 딜러 등을 통해 석유제품을 받아 주유소 등 소형 유통망에 공급하는 유통업자다.

석유대리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한 저장시설과 수송장비, 자본금 1억원 등 비교적 까다로운 요건을 갖춰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97년 석유대리점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고, 임차한 저장시설을 갖춘 사업자도 대리점 등록이 가능해지는 등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이후 석유대리점 수는 급격히 증가해 2000년 150개에서 지난해에는 400개에 육박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들 중 탈세 목적의 유령 석유대리점이 전체의 25%에 달하는 100개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유령 석유대리점들은 대부분 저장시설을 단기로 임차해 일단 대리점으로 등록한다. 이후 주유소에 제품을 납품하기로 하고 대금을 먼저 받은 상태에서 실제 물건은 지급하지 않아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면세유 등을 주유소에 일반 기름으로 속인 채 공급해 세금을 가로채는 수법을 주로 쓴다. 유령 대리점과 주유소가 짜고 허위 계산서를 주고받아 세금을 환급받기도 한다.

손쉽게 석유대리점 등록이 가능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즉시 폐업하거나 명의를 바꿔 재영업 하는 경우도 많다. 석유유통협회 추산에 따르면 석유대리점 신규 등록수는 2010년 이후 매년 110개 이상 돼 왔고, 2014년에도 116개나 됐다. 해마다 폐업하는 대리점도 50∼80개에 달한다. 수많은 석유대리점이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고 있고, 이런 가운데 탈세와 범죄가 난무하며 시장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석유 유통과정에서 유령 대리점들이 무자료 거래 후 종적을 감추면서 선량한 주유소 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국세청은 불법 자료상으로 적발되었거나 무자료 유통으로 적발된 대리점과 거래한 주유소의 경우 모든 거래 내역을 불법행위로 간주해 큰 폭의 징벌적 세금을 추징한다.

유령 석유대리점은 국가 세수 확보의 건전성에도 해를 끼친다. 2012년 자원경제학회 연구 용역에 따르면 석유대리점들의 무자료 거래로 인한 탈세 추정액은 연간 5400억원에 달한다. 보다 못한 석유유통협회는 지난해 3월 석유일반대리점 등록 요건을 강화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건의했다. 특히 저장시설 기준 관련 기존 ‘700㎘ 이상 자가 소유 및 임대 가능’ 조항을 ‘50%인 350㎘ 이상은 반드시 자가 소유’로 바꿔야 한다고 요청했다. 산업부도 지난해 3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의 입법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개정령은 아직도 처리 되지 못하고 있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개정령의 처리가 지연되면서 ‘먹튀’ 대리점으로 인한 거래 사기와 탈세 등 범법 행위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서둘러 석유대리점 신규 등록요건을 강화해 석유유통시장의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