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만 이기면 뭐하나. 정권 뺏기게 생겼는데.”
이명박정부 당시 핵심 관계자가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이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출현 등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이 역대 어떤 총선보다 유리한 구도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경계하는 목소리다. 그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야권 헤게모니 다툼과 재편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어 자칫 2007년 한나라당 경선 효과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 대 박근혜’라는 당시 야당 대선후보 경선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고, 이후 여당(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530만표차로 대패했다. 지금은 야권 분열로 이번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제1당 지위를 유지할지는 몰라도 ‘문재인 대 안철수’ 대결에 국민 관심이 집중되면 차기 대선은 2007년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관계자는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회의가 79석이란 적은 의석을 갖고도 15대 대선에서 정권을 거머쥐었다”며 “총선 승리가 여권의 지상명제가 돼선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실제 안철수 의원이 더민주를 탈당한 이후 국민들의 관심사는 ‘친박(친박근혜) 대 비박(비박근혜)’에서 ‘문재인 대 안철수’로 옮아가는 경향이 농후해졌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빠지고,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4∼8일 전국 유권자 2518명을 대상으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를 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2.0% 포인트)한 결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안 의원, 더민주 문 대표가 모두 18%대 지지율을 기록했고 1, 3위 격차가 0.3% 포인트에 불과했다. 12월 둘째 주 조사에선 김 대표와 안 의원 지지율 격차는 11.7% 포인트였다.
여당 내에서는 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새누리당은 개혁의 피를 수혈해야 한다”며 인재영입을 통한 분위기 반전을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 발표된 1호 영입인사 면면이 ‘종편패널 출신’ ‘변호사 일색’ 등 참신성과 거리가 멀고 기존 당원을 영입인사라고 소개해 빈축을 샀다. 여기다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으로 발목을 잡아 제대로 국정을 펼 수 없다”며 총선에서 180석을 얻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자는 김 대표 주장에 대한 의원들의 평가도 곱지 않다.
수도권 중진 정두언 의원은 “선진화법은 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법인데 이를 개정하려면 먼저 국민들한테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친박계 핵심 김재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만해 보일까 걱정”이라며 “유권자들에게 오만하게 보일 때는 반드시 패배한다는 게 선거의 기본 상식”이라고 했다. 야권이 결국 수도권에서 ‘여당 후보 맞춤형 저격 공천’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예비후보들 사이에 퍼지면서 과반의석 확보도 쉽지 않다는 예상도 나온다.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관련기사 보기]
야당 싸움에 총선 승리 장담하는 與… “2007년 교훈 잊었나” 경계 목소리
입력 2016-01-12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