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중턱 경원선 폐터널에는 바닥에서 천장을 향해 역(逆)고드름이 자란다. 경원선 종착역인 신탄리역에서 철원 방향으로 3.5㎞ 떨어진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선에 있다. 터널의 설치연도나 사용목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규모나 형태로 볼 때 일제강점기 경원선 복선공사로 터널을 시공하다가 일본의 패망으로 중단된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터널 내에 역고드름은 2005년 마을 주민에 의해 알려졌다. 길이 100m, 폭 10m의 터널 바닥에는 다양한 크기의 역고드름 수십 개가 솟아올라 있다.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볼 수 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식인상어의 입 같은 모습이다. 천장에서 내리 뻗은 고드름은 날카로운 칼날 모습인 반면, 밑에서 솟아오른 역고드름은 선인장처럼 뭉텅뭉텅하다. 자연이 빚어놓은 조각품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선인장, 독수리, 인간탑…. 모습도 가지가지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고드름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첫째 터널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지면에 얼어 있는 얼음 위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고드름이 위로 커가는 것이며 둘째 지면의 얼음 표면의 미세한 물 분자가 지하에 있는 물 분자를 솟아오르게 해 고드름이 자란다는 것이다. 지상과 지하의 온도 차이에 의해 지하의 물은 지상의 얼음과 상대적인 에너지 차이로 인해 지상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천 역고드름에는 이러한 두 종류의 생성원인이 모두 적용됐다.
재인폭포는 연천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로 한탄강 지형이 빚은 절경이다.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답기로 유명해 제주도 천지연폭포와 비견되곤 한다.
한탄강 지류를 따라 넓은 들판 한 가운데 평지가 움푹 내려앉으면서 생긴 협곡에 위치해 있다. 재인폭포의 절경을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는 스카이워크(sky-walk) 형태로 만들어졌다. 27m 높이의 전망대 계단을 내려가면 Y자 형태의 협곡이 이어진다.
웅장한 절리의 품에 안긴 높이 약 18m의 폭포수가 너비 30m, 길이 100m의 소(沼) 위로 떨어지는 장관을 연출한다. 하얀 얼음기둥이 거대한 동굴처럼 파인 현무암 주상절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장쾌한 위용을 뽐낸다. 폭포는 지금도 보이지 않게 변화하는 중이다. 폭포의 물살이 현무암으로 이뤄진 주상절리를 조금씩 침식시켰고, 폭포도 조금씩 뒤로 물러앉게 됐다. 현재의 위치는 강변에서 350m 정도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폭포에는 슬픈 이야기도 얽혀 있다.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광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줄을 타는 재인(才人)이었던 남편에게 마을 원님이 재인폭포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렸다. 광대의 아내에게 흑심을 품은 원님의 계략이었다. 줄을 타던 남편은 원님이 줄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뒀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아내는 원님의 코를 물어버리고 자결했다. 이때부터 이 마을을 ‘코문리’라 부르게 됐고 현재 고문리(古文里)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문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설과는 또 다르다. 폭포 아래에서 놀며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던 재인이 사람들과 내기를 했다. “양쪽 절벽에 외줄을 묶어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소.”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며 자신의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재인이 쾌재를 부르며 호기롭게 줄을 타자 아내를 빼앗기게 된 사람들이 줄을 끊어버렸다.
약 27만년 전 분출된 용암이 식으면서 생긴 한탄강은 곳곳에 그림 같은 풍경을 풀어놓았다. 용암으로 막힌 물은 화산암 틈새를 가르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물살의 힘이 무른 현무암을 깎아내면서 한탄강과 임진강은 주상절리의 웅장한 협곡을 갖게 됐다. 연천군 일원 한탄·임진강이 지난 12월18일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았다. 면적 767㎢에 이른다.
연천의 임진강 일대 화산지형 중 백미로 꼽히는 것이 동이리 주상절리다.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다. 강줄기를 따라 높이 40∼50m의 직벽이 약 1.5㎞나 뻗어 있어 위용이 대단하다. 연천읍과 전곡읍을 잇는 차탄천에서는 은대리 용바위 주변 주상절리의 모습이 장관이다. 왕림교에서 내려다보면 수십 m 높이의 장대한 협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천은 ‘전쟁의 땅’이었다. 가장 앞선 전쟁의 흔적은 1500년전 임진강을 끼고 벌어진 전투다. 고구려와 백제가 한 치의 양보 없이 격돌했다. 특히 신라·백제 연합군에 밀려 한강 지역에서 패퇴한 고구려가 임진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한 뒤부터 연천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됐다.
당시 전쟁의 흔적은 임진강변에 남아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6∼7세기 최전방 전투요새였던 이 성들은 지금 조용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모두 강가 높은 둔덕에 세워져 있어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 물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지대 절벽 위에 자리잡은 당포성은 복원이 잘 돼 있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에 터를 잡아 임진강 남쪽 백제와 신라의 공격을 방어했다. 성곽에 오르면 시원한 임진강 풍경과 강 너머 파주·동두천의 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이리 주상절리가 가깝다. 은대리성은 주변 소나무숲과 삼형제 바위의 경관이 근사하다.
임진강이 북동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는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미산 자락에 자리한 숭의전은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한 4명의 왕과 고려의 충신 16명을 봉향하는 곳이다. 숭의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명에 의해 왕건의 원찰(기도처)이었던 앙암사 터에 지어졌다. 숭의전 외삼문 앞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숭의전을 굽어보고 있다.
여행메모
신탄리역에서 철원 방향 ‘역고드름’… 군사지역 재인폭포 야영·취사 금지
서울에서 동부간선도로나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다 3번 국도를 따라 의정부와 동두천을 지나면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닿는다. 자유로를 타고 문산나들목으로 나가 37번 국도를 따라가도 된다.
전곡읍에서 계속 북쪽으로 달리면 연천읍과 대광리를 거쳐 신탄리까지 이어진다. 대중교통도 가능하다. 전철1호선 동두천역에 내려 경원선 기차로 갈아타 뒤 한탄강역에서 하차해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역고드름은 3번 국도를 타고 연천으로 가다가 경원선 종착역인 신탄리역에서 철원방향으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연천과 철원의 경계선 우측에 ‘역고드름’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고대산 방향으로 비포장 좁은 길을 2㎞ 정도 올라가면 역고드름 동굴이 나타난다.
재인폭포는 군사지역이라 야영과 취사를 할 수 없다. 인근 불탄소가든(031-834-2770)은 참게와 메기, 동자개(빠가사리) 등을 넣어 끓여낸 매운탕으로 유명하다. 한탄강 오두막골(031-832-4177)의 가물치 구이도 별미다(기획감사실 031-839-2804).
연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