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의 꽃씨 칼럼] 대마는 아무나 잡을 수 없다

입력 2016-01-12 17:48

‘검은 사제들’이라는 영화를 아는가. 최첨단 도시 서울 한 복판, 사령에 붙잡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한 소녀가 있다. 그런데 이 사령은 보통 마귀가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테러 지진 화재 재앙을 일으키는 12형상 중 하나다. 즉 보통 잡귀가 아니라 대마(大魔)다. 그러나 기존 사제들은 이러한 현상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때 장미십자회 소속 김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뭐가 겁들이 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한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냥 모른 척 하실 겁니까?”

그는 신학교에서 추천한 보조사제와 함께 소녀를 찾아간다. 그러나 김 신부가 사령에 붙잡힌 소녀를 붙잡고 대마의식을 하는 동안 끔찍한 현상과 흉측한 대마의 모습을 직면하고 보조사제는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고 만다. 대마는 아무나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다시 뉘우치고 돌아온 보조사제와 함께 김 신부는 소녀에게서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사령을 쫓아내는 구마에 성공한다.

‘검은 사제들’은 이성과 합리·과학성으로 표방되는 현대사회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단면을 들춰내며 인간 영혼의 문제를 다시 환기시킴으로써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가톨릭의 야심작이다. 또한 이성과 합리적 신앙 패턴을 내세우며 현대인으로부터 인정받은 가톨릭이 그 한계를 넘어서 영적인 문제까지 해결하는 이미지도 구축하였다. 앞으로 악령들이 테러 지진 화재 재앙뿐 아니라 증오와 분노로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블랙홀의 세계를 만들어갈 텐데 가톨릭만이 미래 세계의 대안이고 혼돈으로부터 구원할 유일종교라는 사실을 현대인의 무의식 속에 암암리에 넣어주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한국교회도 이처럼 현대적 감각과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일찍이 가톨릭이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현대인을 감동시키며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훨씬 뒤쳐져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또한 대마는 아무나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 시대의 대마, 사회악이 얼마나 판을 치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가. 이러한 때 누가 대마를 잡을 것인가. 광야에서 연단된 강인한 영성과 죽기를 각오하는 자기희생의 사랑, 시대를 관통하는 영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자, 그가 바로 대마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제야 가톨릭의 옛날 전략이었던 이성과 합리적 사고에 호소하고 편애하는 것을 본다. 신학교를 가서 집회를 해봐도 목사 후보생들이 너무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처럼 유약하다. 영적인 내공이 강한 지도자가 절실한 때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공이 강해도 혼자서는 대마를 잡을 수 없다. 김 신부도 보조사제의 팀워크와 희생으로 구마를 완성했던 것처럼.

지금도 한국교회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거미 들쥐 박쥐 같은 사령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바벨론의 음녀와 같은 혼취케 하는 영들이 반기독교적인 세력을 형성해서 얼마나 한국교회를 공격하고 어지럽히고 있는가. 지금 교회마다 다투고 싸우고 고소, 고발 사건이 난무하는 것도 영적 혜안으로 본다면 다 대마에 잡혀있어서 그런 것이다. 더구나 대마는 교회 바깥에서도 현대인을 혼취케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대마에 의해서 유럽교회들이 무너져갔고 미국교회도 쇠락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이 대마를 잡지 못하면 쇠퇴할 수밖에 없다.

2016년, 이제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대마를 잡자. 분열과 다툼의 전갈을 쫓아내자. 남북한의 갈등, 우리 사회의 각종 충돌과 난제들도 좀 더 영적 혜안으로 볼 때는 대마의 도박이나 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사회적 대마, 영계의 대마를 물리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영적 내공을 연마하자. 이것은 지성이나 합리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능력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으자. 연합하여 대마를 쫓아내자.

소강석(새에덴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