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제기됐던 파장이 다시 시작되는 양상이다. 정부가 민간단체가 추진 중인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취소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합의 내용에 따른 것으로 보여, 논란이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말 여성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지원사업 위탁 협약’을 체결키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사업은 홍보물 제작과 배포, 홍보 홈페이지 운영, 수집 기록물 관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를 전후해 체결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여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자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를 위한 한국위원회(민간위원회)’를 적극 지원해 왔다. 지난해에만 정부예산 4억4000만원이 투입되기도 했다. 민간위원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 집’ 등 7개 단체로 구성돼 있다.
여성부 측은 이번 협약 취소가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는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사업을 직전에 취소했다는 점에서 해명의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여성부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더라도 정부 지원은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 측은 여성인권진흥원 측과 사업을 진행하는 데 불만을 가져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인권진흥원이 여성부 산하기관으로, 일본은 “한국이 정부 주도로 등재를 추진한다”며 문제제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여성부는 여성인권진흥원을 배제하고 등재작업에 참여한 단체를 개별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등 여러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여성부가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성부는 2014년 1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위안부 전시전’을 여는 등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적극 공들였다. 김희정 여성부 장관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여성부가 위안부 문제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걸 추진한다. 여성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길 것”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 이후 여성부의 태도가 돌변했다. 위안부 기록물 등재는 정부와 무관하다고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강은희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7일 인사청문회에서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는 민간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여성부 안에서 ‘여성부와 외교부는 한 몸’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업을 한국 정부가 추진하기는 어렵다”면서 “합의 취지를 따지자면 정부가 손을 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본 측은 한·일 간 합의가 파기되느냐 여부를 위안부 피해 사실을 기록유산에 등재하느냐 마느냐로 (판단할 것)”라고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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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12 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