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금융개혁] ‘관피아·낙하산’ 구태 끊어야 금융이 살아난다

입력 2016-01-11 21:50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금융회사가 변하지 않으면 금융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며 금융업계에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사들에 성과주의를 강요하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변화의 의지를 보여 관치(官治)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금융산업이 다른 업권에 비해 발전이 더딘 것이 주로 관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관치의 부작용은 이웃 중국에서도 최근 증시 폭락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시장 자율성을 크게 저해해 통제 불능 위기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지난 한 해 감독 방식을 바꾸고 규제를 풀어 금융사들이 자율과 창의를 발휘할 여건을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관치가 잔존한다면 자율과 창의가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관치는 고위관료로 퇴직한 이후 다시 한 자리를 차지한 관피아(관료+마피아)와 전문성이 부족한 데도 정권의 입맛에 맞아 투입된 낙하산 인사에 의해 이뤄진다. 관피아와 낙하산은 과거보다 투입되는 정도는 다소 약해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11일 최종구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SGI서울보증의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보증보험 독점사업자인 SGI서울보증은 초대 사장(박해춘)과 직전 사장(김옥찬)을 제외하면 금융 관료 출신이 대대로 사장을 맡아왔다.

지난달에는 허창언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금융보안원장으로, 정지원 전 금융위 상임위원이 한국증권금융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서 지난해 10월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이 “부적격 낙하산 인사”라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반대를 뚫고 한국금융연수원장으로 취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엄격해진 ‘관피아 방지법’ 때문에 소속 부처의 산하기관으로 가기 어려워진 고위공무원들이 다른 부처 산하기관이나 관련 협회로 옮기는 현상도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김준호 전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장이 한국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장으로 선임된 것이 그 사례다. 당시 이상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금융위가 미래부 1급 퇴직공무원 자리를 챙겨주는 대가로 미래부의 다른 자리를 보장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공직자 재취업 규제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 내 블로그에서 “당국은 ‘삼성전자 같은 은행’ 타령을 하는데 정부가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해줘서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세계적 기업이 나왔던가”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결국 한국금융의 근본 문제는 은행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있는데, 은행을 권력의 손에서 해방시키는 뾰족한 대안이 오리무중”이라고 탄식했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도 “정부가 소유한 지분이 없는데 무슨 권한으로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이런 금융권 인사 파행이 우리 금융의 수준을 아프리카 콩고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제일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경제 수장의 인식은 그다지 절박해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낙하산 인사에 대해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매번 있었던 공통적 현상”이라며 낙하산 인사를 할 수 없도록 금융사 지배구조를 보완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답변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