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배병우] 복합 불안의 시대

입력 2016-01-11 17:24

요즘 한국인들의 심리 상태를 가장 잘 요약하는 단어가 있다면 ‘불안’일 것이다. 대학 재학생, 취업 준비자부터 30, 40대 직장인, 50대와 고령층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조마조마해한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안의 정도를 계량화한 지표가 있다면 최근 급커브를 그으며 상승 중일 것이다.

무엇보다 수출 감소와 내수 위축으로 인한 경제 악화 가능성이 불안의 근저에 있다. 대부분의 가계가 수천만원 이상씩 빚을 진 상황에서 일자리가 위협받고 소득이 줄어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조선과 건설, 금융업에서 이미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게 남의 일 같지 않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불안이 일시적인 대외 경제 환경의 악화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역내 및 세계 경제에서 일어나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방관한 사이 우리 경제를 빠르게 덮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월급쟁이 생활자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체감하는 불안감이 더 높을 수 있다.

중국 기업의 예상을 뛰어넘는 추격이 그 근본적 변화의 하나다. 중국 기업들은 그동안 단순한 모방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선진기업을 카피하되 그것을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는 능력을 가졌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온라인쇼핑 사이트인 인터파크가 KT와 함께 중국 스마트폰업체 샤오미의 훙미노트3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문이 폭주하는데도 이틀 만에 판매를 취소했다. 이를 놓고 KT가 삼성과 LG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IT 전문가들은 샤오미가 애플과 삼성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한국보다 우수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으로 경쟁자와 차별화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을 창출했다고 평가한다. 제조업뿐 아니다. 중국 인터넷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할 경우 크게는 한국산의 10분의 1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국내 유통업체들의 잠을 앗아가는 악몽이다.

기존 시장을 순식간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기술 변화의 가속화도 겹쳤다. 기술 융합과 복합화 진전으로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스마트카와 전기차 시장이 성큼 다가온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허를 찔린 모양새다. 구글이 7∼8년 전 스마트카 프로젝트를 시작한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에야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시장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신기술로 인한 파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사실은 공포감마저 일으킨다. 일부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다면 국내에서만 수십만명의 생계가 걸린 택시산업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관측을 내놓는다.

저출산 고령화로 우리나라가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인구 절벽에 직면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노동력 공급, 투자, 소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구조적 저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대외 환경 악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신기술의 급속한 도래,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 성장잠재력을 위협하는 인구절벽의 도래 등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는 게 이번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점에서 일회성 폭풍으로 다가왔던 외환위기나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해결이 어렵고 충격이 장기화될 수 있다.

기업들이 종합적인 시각을 갖고 더욱 용의주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기업 문제에 과단성을 가지고 선제 대응해야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배병우 국제부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