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건물 전문 건축회사인 워커 파킹 컨설턴트에 취직한 후 그야말로 수직 상승하듯 매년 승진을 거듭했다. 마침내 29세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사람들은 이민자가 미국의 유명 회사에서 파격적인 승진과 성공을 하게 된 비결을 묻곤 하는데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간 당황스럽지 않다. 단지 매순간 최선을 다했을 뿐 특별한 비결이 없기 때문이다.
상사가 10개 하라면 11개를 했다. 지시한 것보다 항상 더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것도 승진을 해서 성공하겠다는 무슨 각오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면 상사나 동료들이 기뻐하는 게 좋아서 그랬다.
예를 들어 상사가 물을 떠오라고 하면 보통은 그냥 컵에 물을 부어서 갖다 주지만 나는 냅킨까지 챙겼다. 그러면 어떤 상사라도 특별한 대접이라도 받은 양 기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잠언 31장 24절에서 옷을 지어 띠를 만들어 보내는 그 일을 성경을 읽기도 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즐거웠다.
일을 할 때나 리포트를 작성할 때도 나는 정해진 시간이 되기 전에 반드시 일을 끝마쳐 상사의 책상 위에 갖다 놓곤 했다. 상사가 내가 하는 일을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물었다. “내가 자네보다 나이가 스물다섯이나 많고 사회 경험도 그만큼 더 많은데 왜 사람들이 나 말고 자네를 찾는 거지? 그 비결 좀 말해 보게.” 나는 잘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사장은 그냥 물러서지 않고 내가 다른 직원들과 다른 점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첫째, 내가 질문을 많이 한다는 점, 둘째 일을 시키면 그 일을 정확하게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참 멋있게 해낸다는 점, 셋째 묻기 전에 미리미리 진행 상황을 보고해서 안심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날 이후로 사장은 나를 매년 진급시켜 1986년 서른도 안 된 나를 회사 중역에 오르게 했다. 회사라고 인종 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능력이 있으면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유색인이 미국 사람과 똑같이 일을 하면 미국인들은 당연히 미국인을 고용한다. 하지만 미국인이 10개를 할 때 11개를 하면 미국인이 아니라 유색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워커 파킹 컨설턴트는 직원이 200명이나 되는 상당히 큰 회사였다. 내가 29세에 그 회사 중역이 되었을 때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10명밖에 되지 않았다. 더구나 40대는 단 한 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50, 60대였다. 나 혼자만 20대였다.
대략 10년 후에는 회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계산도 섰다. 목표와 돈이 보이자 나는 그것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젊다보니 아무래도 돈보다는 명예와 직위에 더 욕심이 생겼다.
회사 대표가 되기만 한다면 어디서든 이만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그것이 내 삶의 모든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다른 젊은이들처럼 세상의 명예와 부를 향해 나의 몸을 불살랐다.
그야말로 나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런데 1991년 가을, 뉴욕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 위에서 하나님은 질주하는 나를 잡아 세우셨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하형록 <8> 입사 후 해마다 승진 29세에 부사장 ‘탄탄대로’
입력 2016-01-12 18:17 수정 2016-01-12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