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2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60대 여성이 아들의 여자친구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벌어진 ‘충동 범죄’였다. 칼을 휘두른 박모(67·여)씨는 앞서 전화로 싸운 이모(34·여)씨가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하자 과도를 들고 나갔다.
박씨는 “겁만 줄 생각이었는데 이씨가 핸드백을 던져 홧김에 휘둘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 한 번에 이씨는 명치를 찔려 과다출혈로 숨졌다. 당시 이 사건은 112신고 2건을 헷갈린 경찰의 출동 지연으로 이씨가 사망한 사실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지난 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60대 후반 여성에게 12년 수감은 무기징역이나 마찬가지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10일 발간한 ‘치안전망 2016’에서 한남동 사건처럼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노·충동범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된 원인으로는 가정불화와 현실에 대한 불만을 꼽았다. 2010∼2014년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행 동기 중 가정불화는 8.8%, 현실불만은 3.8%였다. 연구소는 이 비율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우발적 동기에 의한 살인은 과거 추이와 유사하나 최근에는 가정불화나 현실불만에 의한 살인범죄가 증가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남동 사건도 가정불화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씨는 아들과 이씨가 사귀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두 사람은 사건 당일에도 이 문제로 다퉜다.
대법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서 가정폭력 발생 이유는 현실불만과 분노가 각각 27.5%, 2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치안정책연구소는 “몇 년 새 빈발한 층간소음, 보복운전 등 분노·충동조절장애로 인한 범죄도 가정불화와 현실불만의 동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회 전반에서 낮아진 삶의 만족도와 경제적 빈곤이 지속적인 스트레스 증가와 현실불만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살인·성범죄·강도·절도·폭력 등 5대 범죄는 올해도 감소세를 유지하되 노인 범죄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가정불화·현실 불만… 분노·충동범죄 증가 가능성
입력 2016-01-10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