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6일 4차 핵실험 나흘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수소탄 시험이 자위적 조치’임을 강변하며 핵 개발 지속 의지를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앞서 핵무기를 체제와 평화유지 수단으로 포장한 ‘명분’ 축적용으로 해석된다. 자신의 ‘핵·경제 병진 노선’ 중 경제성과가 처참하자 대신 5월 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핵개발 업적이라도 과시하려 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 제1비서가 인민무력부를 방문하고 연설한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김 제1비서는 “우리가 단행한 수소탄 시험은 미제와 제국주의자들의 핵전쟁 위험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철저히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그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정정당당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 개발 당위성을 강조한 것은 무엇보다 핵무기를 자신의 최고 치적으로 내세워 지속적인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36년 만에 열리는 당 대회에서 김일성·김정일 선대에 이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 차원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세계 6대 핵 강국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을 업적으로 내세워 김 제1비서를 당 대회에서 주석 및 총비서로 추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핵실험은 이를 위해 졸속으로 기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핵 개발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하 의원은 또 “평양 소식통에 의하면 이번 실험 역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를 개의치 않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일성·김정일을 극진히 대하기 위해 집권 시 ‘제1비서’직까지 신설했던 만큼 주석 직위까지 노리지는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유엔 안보리 및 미·중의 독자 제재에 앞서 핵 개발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6일 ‘정부 성명’에서도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위적 조치’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 ‘정정당당한 것’ 등 모든 표현을 동원해가며 침략적 무기가 아닌 평화유지 수단임을 강변한 셈이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미 북핵 불용 의사를 확고히 한 상태에서 이런 주장은 내부적인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당 대회에 앞서 어떤 업적도 거두지 못했다는 조급증에 휩싸여 결국 최악의 수를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엔 안보리는 자산동결 대상과 대북 수출금지 품목을 각각 확대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의회도 고강도 독자 제재를 추진 중이다. 북한이 기댈 곳은 중국뿐이지만 중국이 호응할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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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11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