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대로 경계성 인격장애 20代, 내연녀 집착 살해 ‘징역 18년’

입력 2016-01-10 21:13
이모(29)씨는 건축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척집을 전전했다. 집을 자주 옮긴 탓에 등교하지 못하는 날이 잦았다. 4학년 때부터는 외할아버지와 생활했다. 어머니는 명절이나 생일에 찾아와 잠깐 머물 뿐이었다.

이씨는 중학생이 되면서 술을 자주 마셨다. 고등학교에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패싸움을 했다. 대학 입학 후 재혼한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는데, 술을 자주 마시는 계부가 보기 싫어 기숙사에서 주로 지냈다. 제대 후에는 이혼한 어머니와 좁은 지하방에서 살았다. 어머니에게 거액의 빚이 있어 대학 복학을 하지 못했다. 택배 상·하차,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활하다 지난해 4월 인터넷 채팅에서 최모(24·여)씨를 만났다.

이씨는 유부녀인 최씨와 내연관계가 됐다. 남편이 있는 늦은 밤에 최씨에게 전화를 하고, 최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하는 등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 내연관계를 최씨 남편에게 들킨 후에도 집착은 계속됐다. 이씨는 최씨가 관계를 정리하려 하자 지난해 5월 최씨를 부엌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최씨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다른 남자와 연락을 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1심은 “유족들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됐다”며 이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이씨의 정신상태 등을 분석한 끝에 원심과 같은 형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전에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경계성 인격장애의 전형적 증상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이어 “어린 시절 학대, 방임을 당한 점이 발병의 원인일 수 있다”면서도 “죄질이 극히 불량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