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마약왕, 숀 펜 만나 자전영화 만들려다 ‘덜미’

입력 2016-01-10 21:44
멕시코의 마약왕 ‘엘 차포’ 호아킨 구스만이 8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공항에서 헬리콥터로 이송되고 있다. 구스만은 이날 탈옥 6개월 만에 고향인 멕시코 북서부 시날로아주에서 총격전 끝에 해병대에 체포됐다. AFP연합뉴스
멕시코 은신처에서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오른쪽)과 할리우드 배우 숀 펜이 지난해 10월 2일 인터뷰 때 악수하는 장면이 10일(현지시간) 롤링스톤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여배우 케이트 델 카스티요
영화 ‘쇼생크 탈출’을 방불케 하는 탈옥을 한 뒤 잠적했던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8)이 8일(현지시간) 6개월간의 도피 끝에 검거됐다. 극적인 탈출 성공에 도취됐을까,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영화계 관계자들과 접촉하다가 수사 당국에 꼬리가 밟혔다. 체포 전 구스만은 미국 유명 배우 숀 펜(55)과 장시간 비밀 인터뷰를 가졌고 이 역시 이번 검거 작전의 빌미로 작용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멕시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검거된 구스만의 신병이 이르면 올해 중순 미국으로 인도될 예정이라고 9일 보도했다. 그간 구스만에 대한 미국의 신병인도 요구를 거절해 왔던 멕시코 당국은 두 차례에 걸친 탈옥이 반복되자 방침을 선회했다.

구스만 탈옥 건으로 지탄받아 온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전날 구스만이 고향인 시날로아주에서 총격전 끝에 체포되자 트위터에 “임무 완료. 검거를 알린다”는 글을 이례적으로 올렸다.

거대 마약조직 ‘시날로아’의 우두머리인 구스만은 마약 밀반입과 조직폭력 등 여러 혐의로 미 정부의 수배를 받아왔다. 2001년 복역 중 빨래 바구니 속에 숨어 탈출에 성공했던 그는 지난해 7월에도 멕시코시티 인근 교도소 감방에서 1.5㎞ 길이의 땅굴을 파 탈옥하는 등 영화 같은 도피행각을 계속해 왔다.

아렐리 고메스 멕시코 연방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에서 “구스만이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하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면서 “구스만 측과 영화 관계자 사이의 접촉을 추적해 그들을 덮칠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사법 당국 관계자도 “펜과 구스만의 인터뷰가 구스만의 행방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들의 만남을 추적한 덕분에 지난해 10월 두랑고 산악 지역에 있는 구스만의 은신처를 찾아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구스만의 체포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 미 대중문화지 ‘롤링스톤’은 펜이 멕시코를 방문해 비밀리에 구스만과 가진 해당 인터뷰 내용과 사진, 동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펜은 기사에서 익명의 현지 조력자, 멕시코 유명 여배우 케이트 델 카스티요(사진) 등의 주선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구스만 측 관계자들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정보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경비행기와 지정된 SUV 차량을 이용하는 등 펜이 소개한 인터뷰 과정 역시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지난해 10월 100명이 넘는 조직원들이 겹겹이 호위 중인 은신처에서 마주한 펜과 구스만은 주선자 카스티요와 함께 긴 저녁식사를 한 뒤 7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가졌다.

구스만은 인터뷰에서 “생계를 위해 6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고 15살 때부터 마리화나와 양귀비를 재배해 팔았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적으로 만연한 마약 중독에 대한 책임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내가 있지도 않았을 때부터 마약 중독 수위는 높았다”면서 “마약 중독은 어떻게 해도 줄지 않는다”고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자신의 마약 밀매와 조직 활동으로 인해 수천명의 사망과 연루돼 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며 정당화했다.

NYT는 멕시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구스만을 인터뷰한 펜과 주선자 카스티요, 영화화 논의에 연루된 모든 영화 관계자들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미 법무부는 관련 보도에 대한 확인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