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사고 위험 때 운전자냐 보행자냐… 車의 선택은?

입력 2016-01-11 04:00



지난 6∼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16’은 자율주행차가 단연 주인공이었다. TV나 스마트폰을 밀어내고 올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임을 재확인시켰다. 미국 드라마 ‘전격 Z작전’에 나온 ‘키트(KITT)’가 현실에 등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목적지만 입력하면 스스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완전자율차 시대가 열리기엔 기술적 진보 외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율차가 달릴 수 있는 교통 환경을 만들기 위한 도로 환경과 제도를 만들기까지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다. 사고위기 시 운전자와 타인, 물질적 피해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사고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등 윤리적·법적 논의도 시작됐다. 자율주행기술이 완전한 무인차(無人車)보다는 운전자의 미숙함을 최대한 보완하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율차, 사고위기 시 최우선 보호대상은 무엇?=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율주행차를 운전자 개입 수준에 따라 0∼4등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최고수준인 4단계는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차가 출발부터 주행, 주차까지 스스로 움직이는 수준으로 구글 등 선두주자는 2020년에 이 같은 차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탑재한 크루즈 기능이나 자동 브레이크 기능, 자율주차 기능 등 단편적 자율 기능은 이미 상용화돼 있다. 자율주행 기술개발이 선진국에 비해 늦은 편인 한국도 2020년에는 특정 상황에서 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3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그러나 자율자동차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기술 외에 안전 규제, 도로 인프라, 법체계 등 사회 전반에 변화가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서울∼세종고속도로를 통신·GPS 기능 등이 전적으로 지원되는 스마트 하이웨이로 건설키로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자율주행차가 전국적으로 상용화되려면 모든 도로가 이런 스마트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 미국 미시간주립대가 지난해 7월 미국 영국 호주 등 영어권 3개국의 18세 이상 성인 1533명을 대상으로 자율주행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56.8%가 자율주행차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장비·시스템 오류로 인한 안전사고, 운전자의 책임소재 문제 등에 대해 우려했다.

특히 사고 발생 시 책임 문제는 매우 복잡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미국 등 자율주행기술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 같은 논의가 시작됐다. 운전자와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운영체제(OS)와 소프트웨어(SW) 업체, 통신사, 지도 서비스 업체, 도로 책임자 등까지 사고 원인 주체도 광범위해진다. 책임 논란은 보험사의 책임 문제와도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도로교통법체제는 운전자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운행만 허용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자율주행하는 3단계 수준 자율차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도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컴퓨터의 판단에 의존하는 자율주행차가 사고위기 시 무엇을 우선하도록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가치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운전자와 다수 보행자가 동시에 위험에 노출될 경우 어떤 위험을 먼저 피할지는 매우 예민한 문제”라면서 “이런 것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없이 자율차가 등장하면 수많은 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 ‘인간 보완 그쳐야’ 주장도=자율주행차가 결국 완전한 무인차보다는 인간 운전자를 보완하는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행기의 경우 자동 운항이 가능해도 반드시 조종사가 운전대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신 음주, 운전미숙, 졸음 등 운전자 과실 때문에 생기는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자율주행 기술은 유용한 보완책이 될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기춘 현대자동차 연구개발기획실장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현대차는 자율주행 기술을 ‘운전 지원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양산하고 있다”면서 “(무인차가 아니라) 안전차를 만들기 위한 자율주행 기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