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한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진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30대 초반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5남매를 혼자 키우셔야 했다. 그 세월이 어떠했으랴.
어느 날 그 ‘30대 과부’는 천막 예배당 부흥회를 밖에서 보시고 무슨 결심을 하셨는지 그날 이후 평생 새벽기도를 다니셨다고 한다. 어떤 내적 사건이 할머니로 하여금 새벽예배로 평생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충남 보령군(현 보령시) 웅천에서 살았던 할머니는 중년에 충남 서천군 장항교회를 다니셨다고 한다. 이 사진은 부흥회를 마친 교인들이 단정하게 찍은 모습이다. 사진 맨 뒷줄 왼쪽 끝이 할머니이시다.
이 분들은 힘든 시절, 주옥같은 신앙으로 뭉쳐진 가족 공동체였으리라. 말년의 할머니는 늘 편찮으셨다. 누워계신 모습이거나, 힘들게 기도원에 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족 앨범의 오래된 사진에서 나는 할머니의 따뜻했을 교회공동체와 새벽기도의 힘을 느낀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신앙의 공동체로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가치를 할머니로부터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앙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은 항상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주었고, 점점 차가워지는 사회에서도 따뜻한 구석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키워가게 하고 있다. 임미정
◇필자 약력=피아니스트. 서울대 음대 졸업. 한세대학교 교수이자 음악NGO인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Music For One)’의 설립자이다. 음반 및 연주활동과 더불어 음악을 통한 남북교류에 힘쓰고 있다. 또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교육 프로젝트를 국내와 캄보디아, 탄자니아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다.<캘리그라피 신승원>
[사진, 話하다] 할머니가 평생 새벽기도 결심하신 그날
입력 2016-01-10 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