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박원순은 안철수 도울까

입력 2016-01-10 17:59

‘서울시장 박원순’ 탄생에 안철수 의원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1년 정치권에 돌풍을 일으키며 나타난 그는 지지자들로부터 ‘서울시장이 되라’는 강한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덥수룩한 수염의 박원순 변호사와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깨끗이 양보했다. 당시 5%였던 박원순의 지지율은 안 의원 지지율인 50%대로 뛰어올랐고, 이어 10·26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자리를 꿰찼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할 당시엔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다. ‘안 의원이 없었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없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닌 셈이다. 더욱이 박 시장은 이를 토대로 대권주자 반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박 시장이 안 의원에게 빚을 톡톡히 진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은 안 의원과 거리를 두려는 모양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순간이 안 오도록 해야 한다. 두 분(안철수·문재인)이 다 잘돼야 한다”고 했다. 질문에 대한 적확한 답변을 피해간 것이다. 그 이전에도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안 의원이 추진 중인 ‘국민의당’에 몸담을 생각이 아직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두 사람은 아무런 접촉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앞서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에 대해 안 의원은 거부하고 탈당한 반면 박 시장은 수용하고 당에 남는 정반대의 길을 간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하겠다.

서울시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으면 당적을 옮기는 걸 쉽게 결정하기 힘들 것이다. 서울시의회를 더민주가 장악하고 있는데 당적을 버렸다간 시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이 참에 안 의원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게 야권 대선후보 경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까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의 발언은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박 시장은) 분열형이 아닌 통합형 정치인으로, 총선 후엔 훨씬 더 많은 국민적 기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과 달리 ‘야권 통합’을 위해 애쓴 정치인 이미지를 갖고 감으로써 차기 대선 국면에서 많은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박 시장은 더민주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안 의원은 청산 대상으로 ‘낡은 진보’를 지목했다. 더민주의 주류인 친노와 486 운동권 출신들을 겨냥한 말이다. 안 의원과 신당을 함께 만들고 있는 김한길 의원은 “애오라지 계파 이익에 집착하는 패권정치의 틀 속에 주저앉아 있다”고 그들을 비판했다. 시중 여론도 비슷하다. 박 시장은 이런 지적들을 ‘분열형 주장’이라고 폄하하지 말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야권 개편은 물론 전면적인 정치개혁까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중론 아닌가.

도의적인 문제도 있다. 안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 만들기의 일등공신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어려울 때 돕는 게 인지상정이다. 안 의원이 제3지대에서 고전(苦戰) 중인 요즘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과 문 대표의 리더십을 주목하면서 어떤 결정이 유리할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박 시장의 현재 모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안 의원으로부터 대선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를 각각 양보받은 ‘문·안’의 연대보다 ‘안·박 연대’가 성사된다면 상대적으로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더민주의 중심축인 호남 지지기반이 무너져가고 있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