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의 개별성 탐구. 아래 2개의 판결을 보자.
①초등학교 교사 A는 학부모 2명에게서 현금 상품권 공진단 등 460만원의 금품을 받았다. 학부모는 “과제 검사 때 혼내지 말아 달라” “생활기록부에 못하는 학생으로 적지 말아 달라” 따위의 부탁을 했다. A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의 판결은 ‘무죄’.
②초등학교 교사 B는 학부모 7명에게서 현금 상품권 양주 등 179만원의 금품을 받았다. “아이의 학교생활은 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는 B의 말에 학부모들은 차례로 촌지를 줬다. B에 대한 부산지법 형사5부의 판결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A·B 모두 금품 수수가 인정된다. 그런데 왜 결과는 갈렸을까. A와 B의 신분에 답이 있다. A는 사립, B는 공립학교 교사. 이에 따라 비공무원인 A에게는 배임수재, 공무원인 B에게는 뇌물 혐의가 적용됐다.
뇌물죄는 직무 관련 돈만 받으면 처벌되지만, 배임수재죄의 경우 ‘부정한 청탁’이 끼어 있어야 성립된다. 이 요건이 엄격해 사립학교 교사의 촌지를 검찰이 법정에 세우는 사례가 드물다.
A의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아이를 잘 보살펴 달라는 취지의 부탁은 통상 부모가 교사에게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봤다. 무죄 선고에 여론은 비난 일색이었지만, 법관들 사이에서는 ‘수긍할 만하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대법원까지 가서야 유무죄 결판과 개별 촌지의 법적 한계에 대한 기준이 나올 것 같다.
촌지 교사 단죄 여부보다 심각한 것은 촌지 그 자체가 자아내는 암울함이다. 가뜩이나 같은 능력의 학생이라도 부모 경제력에 따라 서울대 입학 가능성이 90%까지 벌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세상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촌지 상납 능력마저 포함된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기회는 공평하니 희망을 갖고 공부하자’고 말할 수 있겠나. 공정경쟁에 대한 믿음이 깨진 교실, 여기서 교권(敎權)의 추락도 시작된다.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
[한마당-지호일] 촌지 vs 촌지
입력 2016-01-10 18:01 수정 2016-01-10 2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