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신뢰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취임 후 3년간 줄곧 주요국을 대상으로 정상외교를 하면서 강조해 왔던 신뢰외교가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맞아 성패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신뢰외교는 대북정책은 물론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 등 박 대통령의 여러 대외구상을 관통하는 기조다.
문제는 지금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4차 핵실험이라는 도발을 다시 감행했다. 박 대통령이 3년간 추진해 왔던 남북관계 진전 역시 다시 한꺼번에 후퇴할 위기에 처했다. 특히 북한이 이번에 다시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더 이상 ‘북한의 핵 포기’는 부질없는 희망사항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돼 버렸다. 더욱이 북한은 언제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국제사회의) 제재 고깔’을 핵실험의 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화와 압박은 결국 북핵 문제에 영향을 줄 주요 변수가 아니었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와의 공조다. 그중에서도 단연 ‘중국 역할론’이 다시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5년 내내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계속했던 이명박정부와는 달리 박근혜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남다른 ‘친중국 정책’을 펴왔다. 중국 역시 박 대통령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오래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는 뜻으로 ‘라오펑유(老朋友)’로 부르고 있다.
이런 친중 정책이 우리의 최대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서 ‘중국 경사론’을 불러오는 등 우려 섞인 시선이 제기될 때도 박 대통령은 과도하게 눈치 볼 필요 없는 자신감 있는 외교를 주문해 왔다. 박 대통령이 서구국가들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하이라이트인 열병식에 참석한 것도 이런 차원이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 역할론’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 최고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것도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이었다.
앞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본격적인 대북제재 방안들이 논의되겠지만 실제 제재 효과는 지난 세 차례 경험에서 보듯 장담할 수 없다. 국제사회 제재가 그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북한에 가장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중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번에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중국의 기본 입장은 북한을 숨통까지 옥죄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에 맞서는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의 북한 역할이 여전히 중국의 핵심이익과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 핵실험 당일 ‘강력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이틀 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 오랜 레퍼토리를 반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수차례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입으로는 “북핵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공동성명 등 공식문서에는 남한을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 정부가 이런 중국의 수사(修辭)에 만족할 수는 없다. 립서비스나 수사 대신 강력한 대북압박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 물론 국제 외교질서로 볼 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계속 강조하면서 쌓아온 신뢰외교가 ‘허상’이 아니라면 이제 중국에도 할 말을 분명히 하면서 요구할 것은 확실히 요구해야 한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뉴스룸에서-남혁상] 시험대 오른 ‘신뢰외교’
입력 2016-01-10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