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꿈속에서 탕웨이를 닮은 회사 후배가 울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후배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던 안타까운 마음만은 꿈을 깬 후에도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지난 한 주 동안 회사에서 좀 힘든 일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중압감을 견디며 애쓰느라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웠던 마음이 그런 꿈을 꾸게 만들었나 보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일이 있다. 그 일이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인 일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싫어도 견뎌야 하는 일이 있고, 더러는 견뎌지는 일도 있다. 그래서 또 살아지는 일상들.
내게도 그렇게 견뎌온 시간들이 있다.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공부하며 어렵게 졸업한 대학생활이 그랬고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시 쓰는 일로는 먹고사는 일을 해결할 수 없어 여전히 회사를 다니며 잠을 쪼개가며 힘들게 시를 썼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던 신인 시절이 그랬다.
며칠 전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 서울 인사동 어느 술집에서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불쑥 무뢰하게 인사를 드린 후배들을 시를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흔쾌히 반가워해주시며 거금의 술값을 치르고 격려도 해주셨던 선생님과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그때 그 무조건의 격려와 따뜻함이 우리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그동안 다들 시집 몇 권씩 낸 시인이 됐으니 우리도 힘든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가 돼줘야 할 텐데 우리는 아직도 우리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허튼소리를 지껄여댔다.
우리는 시도 쓰고 우리는 자유도 있는데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불행이 부족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 시대가 자꾸 술을 마시게 해요. 저는 살 찐 게 아니라 술 찐 거예요. 이 시대에 비만은 프롤레타리아의 상징이래요. 그러니 이 시대의 비만은 제 살들은… 결핍… 상징…. 취한 내게 선생님이 한 말씀 하셨다. 취해도 괜찮아. 그건 질병이 아니고 슬픔의 두께니깐.
안현미(시인)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슬픔의 두께
입력 2016-01-10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