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확성기 방송 재개 첫날 중부전선 르포] “독재국가선 인간 본능도 통제”… 목소리 쩌렁

입력 2016-01-08 21:32 수정 2016-01-09 01:06
우리 군의 주력 무기인 K-9 자주포가 8일 차량에 실려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따라 북한군의 군사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전방부대 경계 및 도발 대비 태세를 크게 강화했다. 연합뉴스
“북한 동포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싫은 비밀이라는 게 있지요? 하지만 독재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의 본능까지도 통제하는데요.”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된 8일 12시. 중부전선 ○○사단 일반전초(GOP) 철책은 긴장한 듯 파르르 떨렸다. 철책선 바로 뒤에 설치된 대형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은 체감온도 영하 18도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북쪽으로 날아갔다.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방송은 개인 사생활을 존중하는 남한과 이를 무시하는 북한을 은근히 비교했다.

대형 확성기와 북한군 경계초소(GP)는 2㎞정도 떨어져 있었다. 방송 진행자는 “새해를 맞아 건강을 위해 금연을 결심한 분들이 계실텐데요. 저도 올해 금연을 결심했습니다”라고 금연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 24개 소형 스피커로 구성된 확성기에서 건아들의 ‘금연’과 2인조 혼성그룹 리미와 감자의 ‘오빠 나 추워’ 등 우리 가요가 흘러나왔다.

곧바로 다양한 방송이 계속 진행됐다. 북한 인권을 비판하는가 하면 4차 핵실험을 정면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오늘의 초점’ 진행자는 “핵 도발은 국제사회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적반하장의 핑계와 위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행복한 대한민국’이란 코너는 혹사당하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힘겨운 현실을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쁨조의 관계를 다룬 ‘호위사령부 25시’라는 드라마도 방송됐다.

대형 확성기는 가로 3m, 세로 6m 크기였다. 이 확성기의 송출 거리는 주간에는 약 10㎞ 이상, 잡음이 없는 고요한 밤에는 24㎞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전방부대 군인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충분히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의 조준사격에 대비해 확성기 앞에는 1m 높이의 둔덕이 둘러쳐져 있었다. 둔덕 앞쪽에 무인카메라가 설치돼 상황실에서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 확성기로부터 30m 떨어진 곳에 구축된 벙커에는 각종 방송운영 장비가 가득 들어찬 방송실이 있었다. 방송실 문에는 ‘진실을 알리자’는 팻말이 붙어 있고, 문 앞에는 FM 수신 안테나와 위성안테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방송실 벙커 위는 초소였다. 방송을 하지 않을 때는 병사들이 이곳에서 경계근무를 선다.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면 북한의 공격이 있을 수 있어 100여m 떨어진 지상초소로 이동해 경계근무를 한다. 방송시간은 지역마다 다르다. 군은 고정형 확성기 11곳과 이동형 확성기 6개를 투입해 게릴라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대형 확성기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방송 재개를 앞두고 이 지역에는 초소와 감시설비가 추가됐다. 북한의 포격 도발을 탐지하는 대포병 레이더(AN/TPQ-36)와 토우 대전차 미사일, 대공 방어무기 비호가 인근에 배치됐다고 했다. 경계근무를 서던 김시환 일병은 “적이 도발한다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이날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생일이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중부전선=국방부공동취재단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