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합의’에 방심… 정부가 놓친 北 움직임 3가지

입력 2016-01-08 21:10



정부가 8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한반도 시계’는 다시 지난해 8월로 돌아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로 인권 탄압 비판을 피해갈 명분과 4차 핵실험 성과를 거머쥔 상태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8·25합의에 취해 대북 정세를 오판한 정부 통일·외교·안보라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실험을 결정했던 지난해 말에는 북한 내부 정세를 파악할 만한 계기가 몇 차례나 있었던 만큼 국민 분노가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추진 사실이 알려졌다. 유엔이 이를 인정하면서 곧 방북이 성사될 것 같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해가 넘어가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북한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는 징조였지만 우리 정부에겐 ‘딴 나라’ 얘기였다.

당시 청와대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해 추진 사실도 모르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반 총장의 ‘한국인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해야 했지만 외교·통일부는 “유엔 차원의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설왕설래하던 사이 첫 보도 한 달 후인 12월 1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핵실험 명령을 내렸다.

두 번째 계기는 같은 해 12월 11∼12일 열린 제1차 남북 당국회담(차관급)이다. 8·25합의에 따라 열린 이 회담은 대북정책 방향을 결정할 중차대한 계기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북한은 예상과 달리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요구한 우리 측에 금강산 관광 재개와의 연계 이행만 강요했다. 또 핵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도 했다.

결국 판이 깨지자 정부는 “북한의 막무가내 자세 탓”이라고 강조하는 데 급급했다. 북한 의도와 내부 분위기를 탐색하는 것보다 국내 여론을 무마하는 데만 남북 대화를 활용한 것이다. 통일부 내부에서조차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 내린 중대한 오판이며, 통렬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어 지난해 12월 29일에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소식이 북한으로부터 날아들었다. 8·25합의 성사 주역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사고사(死)다. 남북 충돌 직전 중재에 성공해 북한에서 ‘영웅’ 칭호까지 받은 그의 돌연사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2003년에도 대남담당 비서였던 김용순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등 전례가 많아 암살설도 나왔다.

정부는 그러나 “김 비서가 신의주에 시찰을 나갔다가 돌아오던 중 군용트럭과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북정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염두에 두고 음모론을 잠재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핵실험 여부를 두고 군부와의 마찰 끝에 암살된 것이란 주장도 하고 있어 면밀한 분석이 필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 제1비서는 그의 사망 나흘 만에 핵실험 최종명령서에 서명했다. 같은 달 김 제1비서의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다”는 언급, 핵 관련 내용이 빠진 신년사 등 중요한 시그널에 대한 분석 역시 무책임했다는 목소리도 크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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