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코앞에 둔 지난달 30일, 경기도 신도시의 한 아파트에 ‘경비원 휴게시간 변경 공지’라는 A4용지 한 장짜리 안내문이 나붙었다. 최저임금이 올랐으니 경비원 휴게시간을 늘린다는 내용이었다.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휴게시간을 늘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런 ‘꼼수’는 연말연초에 대부분 아파트에서 목격됐다. 이뿐이 아니다. 시간당 최저임금 6030원을 둘러싼 ‘씁쓸한 꼼수’는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오르긴 올랐는데…=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모(66)씨는 요즘 한숨이 늘었다. 그는 격일제로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근무한다. 그런데 올해부터 야간 휴게시간이 1시간 늘어 6시간이 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시간당 450원씩 임금이 올랐지만 1시간을 더 쉬는 바람에 손에 쥐는 돈은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
휴게시간이라고 딱히 편하게 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좁은 경비실 의자에 웅크려 선잠을 청하다가도 택배를 찾는 인기척에 깨기 일쑤다.
경기도 성남의 영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다니는 홍모(32)씨에게 최저임금은 곧 ‘임금 상한선’이다. 그래도 최저임금이라도 받는 게 어디냐며 격무를 버텨왔는데 이제는 지친다고 한다. 홍씨는 “따로 주던 식대 10만원을 올해부터 월급에 포함한다고 한다. 결국 받는 돈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장은 ‘경기가 어려우니 같이 좀 살자’는데 왜 야근은 끊이지 않는 걸까요”라고 했다.
서울의 사립대생 백모(21)씨는 지난 6개월간 학교 주변 편의점에서 주 30시간씩 일했다. 지난 연말 편의점 사장으로부터 “새해부터 이틀만 나오면 된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매주 14시간만 근무하라는 소리다. 주 15시간 이상 근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을 아끼기 위한 ‘일자리 쪼개기’는 흔한 꼼수다. 백씨는 “다음 학기 등록금에 보태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밑져야 본전이니=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222만여명이다. 전체 근로자의 11.5%나 된다. 최저임금법에선 ‘최저임금액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하거나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을 낮춘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 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을 당해도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는 ‘시정 조치’만 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용주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다.
여기에다 고용주가 ‘갑’이니 하소연할 데도 없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뒤 서울 영등포구의 PC방에서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모(19)군이 그런 경우다. 두 달째 야근수당은 물론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에 망설이는 이군을 보고 PC방 사장은 “어차피 아르바이트할 애들은 널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군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기획] 쥐꼬리 최저임금… 그마저 안주려는 ‘甲들의 꼼수’
입력 2016-01-0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