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5개월 된 티건은 태어날 때부터 폐가 한쪽밖에 없었고, 심장도 반쪽뿐이었다. 처음 보는 희귀한 사례에 의사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티건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엄마 캐시디 렉센과 아빠 차드는 죽어가는 딸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주변을 샅샅이 뒤진 끝에 보스턴 지역에서 심장 집중치료 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진을 소개받았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부부에게 병원은 아무런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드의 여동생이 ‘20명의 혁신적인 소아과 의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찾았다. 그중 3번째 의사,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니클라우스 아동병원의 심장 수술 전문의 레드먼드 버크 박사와 연락이 닿았다.
니클라우스 아동병원 의사들에게도 선천적 심장 기형을 가진 티건의 사례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수술 방법을 찾던 버크 박사는 영상의학 전문가인 동료 후안 카를로스 무니즈 박사에게 티건의 심장을 3차원(3D) 모델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무니즈 박사로부터 온 회신은 절망적이었다. “3D 프린터가 고장났습니다.”
하지만 이 ‘불운’은 곧 ‘행운’으로 뒤바뀌었다. 피츠버그대 메디컬센터의 소아심장병 전문의 데이비드 에존 박사와 가상현실 기술로 심장을 고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던 무니즈 박사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구글 카드보드(판자로 된 안경 모양의 상자)’. 사무실에서 재미삼아 가지고 놀던 스마트 기기였다.
무니즈 박사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티건의 심장 사진을 자신의 스마트폰에 내려받고, 스마트폰을 고글안경 모양의 카드보드에 장착했다. 티건의 심장을 모든 각도에서 입체적인 형태로 볼 수 있었다. 버크 박사에게 이것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10일(현지시간) 티건은 엄마 뱃속에서 나온 지 넉달 만에 수술대에 누웠다. 카드보드를 통해 심장뿐만 아니라 가슴 부분의 골격계와 장기 구조를 모두 실제처럼 볼 수 있었다. 버크 박사는 전날 밤 카드보드를 쓴 채 연습한 대로 능숙하게 수술을 끝마쳤다. 온라인에서 20달러(약 2만4000원)도 채 하지 않는 카드보드가 모두가 포기할 뻔했던 어린 생명을 구한 것이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어요. 단지 고글안경 모양의 가상현실 기기와 스마트폰으로 우리 딸아이를 살려내다니요.” 캐시디는 감격해서 울먹였다. 티건은 지난 6일 산소호흡기를 떼고 자가호흡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보름 안에 티건이 완전히 회복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7일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20달러도 안되는 구글 가상현실 체험기기 ‘선천성 심장 기형’ 어린 생명 살렸다
입력 2016-01-09 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