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칼 한 칼 돌을 깎아 복음을 새겼습니다”… 성경목록 인장 만든 전각가 김지완 집사

입력 2016-01-10 20:45
전각가 김지완 집사가 지난 5일 서울 송파구의 한 작업실에서 ‘성경목록인보’ 제작을 위해 만든 인장 앞에서 전각과 신앙을 접목한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 전호광 기자
“돌을 유리로 갈아서 면을 평평하게 한 뒤 빨간색을 칠하고, 거울 보듯이 거꾸로 글씨를 써서 새기고 파내는 것이죠. 한 칼 한 칼 집중해 새기다보면 전각가(篆刻家)의 내면이 거울처럼 돌에 새겨집니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지완(58·동서울성현교회) 집사는 전각이 이뤄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김 집사가 꺼내 보인 상자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목록이 새겨진 인장들이 빼곡하게 담겨있었다. 지난해 8월부터 5개월 동안 공들인 작품이다. 그 옆에 빳빳한 한지를 재단해 표지를 만든 ‘성경목록인보’가 보였다. 페이지를 넘기니 전서(篆書)체 열여섯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전각에 입문한 지 8년차가 된 ‘엉터리 전각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 집사는 “생애 첫 작품집인 만큼 성경의 첫 구절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보는 성경 각 권의 인장과 해당하는 성경 구절이 마주보고 있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김 집사는 “이번 작업을 위해 성경을 다시 통독해야 했다”면서 “마음에 감동을 주는 한 구절을 꼽기가 너무 어려워 아내와 딸 등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동작업을 했다”며 웃었다. 66권의 성경 목록을 새기는 작업이었지만 실제로 제작된 것은 80여 개다. 한글과 한자, 양각과 음각 등 글자의 형태와 조각 방식에 따라 결과물의 느낌이 달라서 여러 개를 만든 것도 있기 때문이다.

김 집사는 한국교육방송공사(EBS)와 문화방송(MBC)에서 연출과 기획자로 3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연출가다. 전각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고 신앙에 접목시킨 배경이 궁금했다.

“평생 아이디어를 내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잖아요. 은퇴를 앞두고 크리스천으로서 지금 느끼고 있는 신앙적인 면을 주변 분들에게 진솔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33년 전 EBS 근무 당시 미술 교육자였던 모암(茅菴) 윤양희(73) 선생과의 만남이 인연이 됐다. 윤 선생은 계명대 서예과 교수와 한국전각학회 이사, 대한민국서예대전 운영위원장과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다. MBC로 이직한 후 연락이 끊겼다가 23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다시 연을 맺었다. 이후 김 집사는 매주 금요일이면 빠짐없이 윤 선생 앞에서 전각도를 들었다. 닳고 닳아 거뭇거뭇해진 전각도 몸통의 가죽이 수천 개의 인면(印面)과 함께해 온 시간을 짐작케 했다.

“선생님께선 크리스천이 아닌데도 성경 목록과 어울리는 자형(字形)을 저보다 먼저 고민하고 지도해주셨어요. 항상 ‘전서는 예쁘고 기름지게 쓰면 안 된다. 땅에서 나오고 녹이 슨 듯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느낌이 거친 세상 속에서도 진리가 돼주는 성경말씀과 닮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달 400부를 제작한 성경목록인보는 가족과 교회 성도들,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전시회를 열어보라는 권유도 들었지만 김 집사는 손사래를 쳤다.

“10년 정도는 오롯이 정진해야 내공이 쌓인다고 하는데 전 아직 ‘칼맛’도 제대로 못 봤습니다. 다만 어느 곳이든 복음을 새길 수 있는 곳이라면 계속 전각도를 들어야지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