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수소탄’ 아나운서

입력 2016-01-08 18:42

북한에서 아나운서(방송원)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평양연극영화대학 졸업생이나 전국화술경연대회 참가자 중에서 주로 선발된다. 그 가운데서도 엄선된 극소수만 조선중앙방송에 배속돼 뉴스나 인터뷰 등을 진행한다. 이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방송원은 전쟁이 날 경우 전범(戰犯)이 되므로 평소에 최고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평양 보통강구역 소재 당 고위 간부 전용 병원인 봉화진료소를 이용할 수 있고, 평양피복연구소에서 만든 옷을 무료로 제공받는다.

‘리상벽’ 김주먹(여) 전형규 최성원(여) ‘리춘희’(여) 등 5명은 아나운서의 ‘전설’로 통한다. 모두 인민방송원 칭호를 받았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던 1997년 김정일로부터 최고급 주택인 보통강구역 ‘200세대’ 아파트와 일본 닛산 계열 대형 승용차를 선물로 받았다. 리상벽은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포르투갈 8강전 때 현지에서 생방송을 했으며, 남한 대학생 임수경이 밀입북해 주목받았던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개·폐막식 생중계를 맡았던 인물이다. 김주먹은 소설 낭독에 능해 김일성 전 주석의 사랑을 받았고, 전형규는 김정일로부터 ‘나의 목소리’란 칭송을 받을 만큼 신임이 각별했다. 최성원도 김정일에게서 ‘최고의 화술인’이란 소릴 들었다.

이들과 대등한 평가를 받는 리춘희가 지난 6일 ‘수소탄 실험 성공’을 알리는 조선중앙TV에 나와 방송한 게 화제다. 올해 73세인 그가 분홍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 차림으로 선동적인 방송을 한데 대해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칠순 노장의 힘찬 목소리가 적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평했다. 리춘희는 김일성·김정일 사망 소식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했으며, 2006년 1차 핵실험과 2012년 광명성 3호 발사 때는 감격에 겨운 어조로 방송한 바 있다.

여기서 ‘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남한, 미국 등을 지칭한다. 그런데 우리 국민 모두가 과연 김정은의 기습 도발에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을까. 극소수겠지만 ‘우리 민족 만세’를 외친 몰지각한 사람도 있다는데. 북핵보다 안보불감증이 더 걱정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