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고마운 ‘벽창우’가 고약한 ‘벽창호’로

입력 2016-01-08 19:26

‘꽉 막혀서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세며, 완고하고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이런 사람을 ‘벽창호’라고 합니다.

벽창호는 험한 산지가 대부분인 압록강변 평안북도 벽동(碧潼)군과 창성(昌城)군 지방의 크고 억센 소를 가리키던 ‘벽창우(碧昌牛)’에서 온 말입니다. 땅이 척박하고, 음력 7월이면 추워져 4월이나 돼야 날이 풀릴 만큼 추운 곳이라지요. 힘센 소가 아니면 돌밭을 갈 수 없고, 그러면 사람들이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고마운 벽창우가 고약한 벽창호로 된 것과 비슷한 예가 또 있는데,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그것입니다. 원래 맹렬하고 억척스러우며 강인한 성격의 함경도 사람을 이르던 것인데, 자기 이익을 위해 추잡하게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입니다.

‘막무가내(莫無可奈)’도 한번 고집하면 융통성이 없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벽창호나 막무가내나 문제는 꽉 쥐면 놓지 않는 ‘고집(固執)’이지요. 자기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버티는 고집. 좋게 보면 신념 있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겠으나 좁은 식견으로 자기 생각만 관철하려는 고지식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를 낮추고 귀를 여는 것, 소통과 신뢰의 조건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