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광야의 길을 내는 소명 가졌던 아브라함·모세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인생의 길을 가자
지금 이 땅이 지옥같이 살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헬조선’. 지난해 한반도를 관통한 이 신조어는 최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으로 확산되면서 그 ‘위세’를 이어가고 있다. 꿈과 비전을 찾는 것보다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현 시대를 빗댄 말로, 답이 없는 현실을 일컫는다.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은 ‘하면 된다’는 신념이 통하지 않는 절대절망 상황을 포함한다.
헬조선은 불공정과 불의가 만연된 한국 사회 구조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래서 ‘노력하면 된다’고 조언하는 기성세대를 향해 청년들은 ‘노력’을 ‘노오력’으로 풍자하고 “해도 안 된다고 전해라∼”며 응수한다.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김병관 웹젠 대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흙수저와 헬조선을 탓하는 청년에게 ‘노오력 해보았나’를 물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3포(취업 결혼 출산 포기)와 5포(내 집 마련, 인간관계도 포기), 7포 세대(꿈, 희망까지 포기)가 회자되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정부의 부실 대응,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 잇따라 터진 전 세계적 테러 등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새해 벽두부터 울리는 경제위기 경고음은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헬조선과 다니엘 시대
헬조선과 견줄 만한 성경 시대는 언제일까. 전문가들은 예언자 다니엘이 살았던 시절을 꼽는다. 다니엘서는 신(新)바빌로니아 제국의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BC 604∼562) 시절이 역사적 배경이다. 미국 노스코스트교회 래리 오스본 목사가 쓴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두란노)에 따르면 신바빌로니아는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과 거의 다름없다.
당시 바벨론은 악의 화신이었다. 느부갓네살은 악독한 통치자였다. 그는 자존심과 허영이 강했고 성미가 급하고 살인을 즐겼다. 비이성적인 데다 잔혹하기로 유명했다(단 2:4∼12; 3:1∼6, 13∼15; 4:27∼32). 요즘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은 저리 가라다.
그는 예루살렘 정복 후 하나님의 성전에서 각종 성물을 탈취해 ‘므로닥’이라 불리는 사악한 신의 신전에 두었다.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려고 높이 25m나 되는 황금상을 세우고 그 앞에서 절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어길 시엔 즉각 처형했다(단 3:1∼15).
다니엘과 세 친구는 강제 개명까지 당했다. 다니엘의 바벨론식 이름은 ‘벨드사살’이었는데 ‘벨’은 므로닥 신의 칭호였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거세까지 당하는 굴욕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환관(宦官)이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성경 어디에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부인과 가족이 있었다는 말은 없다. 다니엘의 훈련 책임자가 환관장(단 1:3,7,9)이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시편은 다니엘 시대의 지옥 같은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시 137:4) 일명 ‘복수를 구하는 기도’의 한 대목이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시절을 오롯이 견디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다. 오스본 목사는 “다니엘은 소망과 겸손, 지혜로 무장하고 세상과 맞섰다”며 “힘들다고 떠나고 세상에 동화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강하다”고 말했다.
헬조선을 ‘천국’으로 바꿔보자
이런 가운데 최근 헬조선 세태를 반성하고 청년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을 던지는 메시지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강력한 헬조선 시류에 대한 긍정적 ‘반격’인 셈이다. 이 새로운 분위기는 헬조선 탈출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 ‘지옥’ 같은 이 땅의 구조를 어떻게라도 바꿔보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헬조선 기류에 편승해 절망만 하는 것은 기독교적 가치와도 정면 배치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첫 포문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탈출의 자리가 아닌 소명과 소망의 자리로 바꾸는 게 소명 받은 자의 역할”이라며 “헬조선을 천국으로 바꾸라”고 제안했다. 이재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목사도 지난해 11월 15일 주일설교에서 “한반도는 헬조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언약의 땅”이라며 “사막과 광야의 길을 내는 소명을 가졌던 아브라함과 모세, 예레미야, 바울처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자. 인생을 던져보자”고 말했다.
작가 이외수는 최근 한 인터넷 서점이 발간하는 월간지 인터뷰에서 “요즘은 몽땅 포기하는 시대가 됐는데 자신감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 암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위암 투병 중이다. 8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끝냈고 몸무게도 20㎏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판국에 울화통이 터지지만 주저앉지는 말자. 희망은 버리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PPL(Peace & People Lab)재단 상임이사 김범석(46) 목사는 8일 전화통화에서 “헬조선을 무너뜨릴 최고의 무기는 믿음의 도전”이라고 단언했다. 김 목사는 “유대민족을 이끈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응답하신다”며 “삶의 현장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라”고 주문했다.
PPL재단은 그동안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육성해 왔다. 올해도 26개의 사회적기업을 만들 예정이다. 김 목사는 최근 청년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라면집을 열고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백석신학대학원 채영삼(신약학) 교수는 헬조선 시대 교회의 사명을 강조했다. 채 교수는 “사회 구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게 헬조선의 핵심인데 교회마저 ‘예수 믿고 복 받자’만 되풀이하고 ‘상급론’을 오용하며 세속적 욕망과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희망은 ‘지옥 같은’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이미 와 있고, 오고 있고, 반드시 오게 될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자”고 말했다.
총신대 라영환(조직신학) 교수는 자본가들의 기독교적 윤리 회복을 주문했다. 라 교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인용,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가만을 위한 ‘자본가주의’라 할 수 있다”며 “베버의 정신은 기독교적 자본주의의 산물인 분배와 선순환 등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강 이승훈 선생의 재산 공개념을 예로 들며 “20세기 초 한국의 희망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준 데 있었다”며 “크리스천 기업가들부터 헬조선 청년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분배를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시선] 헬조선을 헤븐조선으로…
입력 2016-01-08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