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클라이밍 체험기] 팔다리 후들후들 등골 오싹 그래도 한발… 공포 넘어선 전율 나를 밀어올렸다

입력 2016-01-09 04:15
영화 ‘히말라야’에 등장한 배우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한 서울 우이동 코오롱등산학교 교육센터 실내 빙벽이다. 지하 3층∼지상 4층으로 이어지는 약 20m 높이의 빙벽은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세계 최대 구조물이다. 남호철 선임기자가 쏟아지는 얼음조각을 맞으며 온힘을 다해 빙벽을 오르고 있다. 이병주 기자

영화 ‘히말라야’에 등장한 배우들은 자연조건에서 훈련하기 어려워 실내 빙벽장을 이용했다. 국내에 실내 암벽장은 많지만 실내 빙벽장은 전국에서 단 한 곳뿐이다. 서울 우이동 북한산국립공원 초입에 자리 잡은 코오롱 등산학교 교육센터다. 지하 3층∼지상 4층으로 이어지는 전체 공간의 규모는 1983.4㎡(600여평). 약 20m 높이의 빙벽은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세계 최대 구조물이다.

추위에 대비해 복장을 갖춘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대형 냉동창고에나 있을 법한 큰 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얼음왕국과 일반 세계를 경계 짓는 듯 위압적이었다. 먼저 장비를 장착했다. 빙벽화와 크램폰(아이젠·등산화 밑창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덧대는 금속물), 아이스바일(손에 쥐고 얼음을 찍는 손도끼 모양의 도구), 헬멧과 안전벨트가 기본이다. 1만5000원에 장비 일체를 빌릴 수 있다.

두꺼운 철문을 열자 냉기가 엄습했다. 영하 10∼20도로 일 년 내내 유지되는 곳이다. 얼음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함께 코앞에 바짝 다가서 있다.

기초 교육부터 들어갔다. 가장 먼저 얼음 위에서 걷는 법. 중요한 점은 양발 앞부분을 모아 ‘A’자 모양으로 걸어야 한다. 팔자걸음으로 걸으면 빙벽화 밑창에 끼운 크램폰이 종아리 뒤쪽과 부딪치면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은 ‘엑스 보디’ 자세가 맞는다고 했다. 뒤에서 보면 몸이 X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사가 날렵하게 얼음을 찍어 성큼성큼 빙벽을 올라갔다. 쉬워 보였다. “팔에 최대한 힘을 빼고, 하체의 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교육받은 대로 따라했다. 먼저 아이스바일로 얼음을 내리쳤다. 얼음 몇 조각이 떨어져 나가며 박히지 않았다. “힘을 빼고 스냅으로 내리치세요.” 머리는 알았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콘크리트에 못질하는 것처럼 몇 번 내리치니 겨우 박혔다. 오르기 전부터 팔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양손의 아이스바일로 망치질(타격)을 하고 나선 ‘키킹’(발로 차 크램폰을 빙벽에 박는 것)을 해야 한다. 우선 오른발 쪽 빙벽을 보고 크램폰을 고정할 곳을 찾았다. 공을 차듯 힘차게 빙벽을 찍어 본다. 느낌이 좋다. 뒤에서 보면 흡사 나무 사이를 오가는 오랑우탄처럼 보인다. 하체는 구부정하고 팔은 축 늘어져서 매달려 있다. 양팔과 양다리를 고정한 뒤 하체 힘을 이용해 일어나야 한다. 하체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 팔로 잡아당기게 된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니 팔에 피가 몰려 단단해지는 펌핑이 오며 완전히 힘이 빠졌다.

본격적으로 20m 빙벽 앞에 섰다. 지하 3층부터 지상 4층까지 이어져 있는 높이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산이 있어 오른다”는 명언을 남겼다. ‘빙벽이 앞에 있으니 올라보자.’ 마음을 다잡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안전을 위해 꼭대기 확보지점에 로프를 걸고(톱로핑) 등반하기 때문에 추락으로 인한 사고위험이 적다. 로프를 맸다. 로프가 추락을 막아주지만 수직 낙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주지는 못했다.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래를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 2t 무게를 견디는 로프가 묶여 있는데도 공포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용기를 내 한 발, 두 발 오르다가 아래를 보니 내 보호 밧줄을 잡고 있는 확보자가 저 멀리 아래에 있다. 쾌감이 몰려왔다. 얼음을 내려찍는 순간 손끝에 전해지는 짜릿함이 빙벽에도 있었던 것이다. 타격할 때마다 얼굴로 쏟아지는 날카로운 얼음조각도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얼음벽을 왜 올라가는지 알 것 같다.

요령도 조금 생겼다. 몸의 중심이 실린 아이스바일과 양다리는 항상 이등변삼각형을 유지해야 한다. 한쪽으로 몸이 쏠리면 허리를 이용해 그쪽으로 몸의 중심을 옮기고 크램폰을 찍은 다리의 무릎을 굽혔다가 펴며 올라가야 한다. 팔심으로 올라가면 얼마가지 못한다는 것도 느꼈다.

아찔하기만 했던 빙벽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단 지루할 틈 없는 운동이고, 목적이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인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그렇다고 비숙련자가 무작정 자연 빙벽에 도전하는 건 목숨을 내놓는 일이다. 일단 등산학교 홈페이지(www.kolonschool.com)에서 교육 정보와 비용 등을 검색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여러 과정이 있는데, 강습과 장비 대여를 포함한 1일 체험반(3시간)의 경우 6만5000원이다. 이후 도전해볼 만하다면 1개월 30만원 정도의 강습 코스가 있다. 개별교육은 물론 단체교육까지 가능하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