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한 대학생활은 이것보다는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의 사립대생 오모(24)씨는 2학년이던 지난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입학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고 한다. 여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세상을 두루 경험할 거라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입시 관문을 넘었다는 기쁨의 유효기간은 딱 1년이었다. 군대 갔다 돌아온 ‘2학년 캠퍼스’에선 막막함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실체는 ‘취업전쟁’이었다. 오씨는 지난해 친구들과 입버릇처럼 “앞으로 뭐 해서 먹고사냐”며 한탄했다고 한다.
걱정, 불안, 두려움 따위의 감정에 밀려 자신감과 자존감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김씨는 이를 ‘대2병’(대학 2학년이 앓는 병)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다들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얘기에 부모님도 걱정하는 눈치다. 먼저 취업 준비를 시작한 여자 동기생들은 상경계열 복수전공이나 기업 인턴을 하며 저만치 앞서 있는 듯했다. 남자 동기들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학교에 나와 토익 책을 펼쳤다.
초조해졌다. 아무 준비 없이 ‘사망년’이 될 수는 없었다. 취업의 ‘지옥문’에 들어간다는 뜻에서 대학 ‘3학년’은 요즘 ‘사망년’이라 불린다.
오씨도 지난해부터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외국인 유학생과 어울리는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자단 활동을 하고, 공모전에도 참가했다. 이런 일을 시급 7000원 치킨집 알바를 하며 해내야 했다. 학자금 대출은 1300만원이 넘었다. 이렇게 2학년 한 해를 보냈는데도 앞길은 캄캄하다. 오씨는 “쉴 틈 없이 달렸어요. 그런데 계속 답답해요”라고 했다.
많은 대학 2학년생이 이런 ‘대2병’을 겪고 있다. 자신감·자존감이 치솟아 생기는 ‘중2병’과 정반대 증상을 보인다. 대2병을 다룬 웹툰도 등장했다. 대학생 작가가 그렸고 ‘대학생 만화’란 제목이 붙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페이스북에서 4만여건 ‘좋아요’를 받았다. ‘이거 나잖아’ ‘내 인생을 이렇게 완벽하게 표현하다니’ 등의 공감 댓글도 1만개가 넘었다.
이 웹툰의 작가 ‘난희’(필명)도 그릴 당시 대학 2학년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취업, 진로를 걱정하다 ‘대2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며 “2학년이 되면 다들 많이 불안해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고민은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료할 방법은 없을까. 오씨를 포함해 대2병을 호소하는 4명과 함께 6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교 상담심리 전문가를 찾아갔다. 상담에 참여한 박모(21·여)씨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기업체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2학년 학점이 안 좋아 1년을 자진 유급할지 고민 중”이라며 “마음은 급한데 정작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김모(21·여)씨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다.
상담 결과는 “자신을 너무 채찍질하지 말라”였다. 이성원 심리상담사는 “학생들이 작은 위협도 크게 느끼고 있다. 2학년은 당장 어떤 결과를 볼 수 없어 더욱 불안하고 막막한 시기”라고 했다. 그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자기 결심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대2병을 개인적 불안심리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져 ‘고민의 시기’가 빨라지는 것”이라며 “대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기획] ‘사망년’이 두려운 ‘대2병’… “졸업하면 뭐해 먹고살지” ‘사망년’ 앞두고 불안·우울
입력 2016-01-07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