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좌파도 진보적인 사람도 아냐”… 연극계 검열 논란 관련 첫 공식 입장 밝힌 연출가 이윤택

입력 2016-01-07 21:36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씨가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신작 ‘바냐 아저씨’를 소개하고 있다. 이씨가 연출하는 이 연극은 27일부터 2월 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나는 좌파가 아닙니다. 진보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당시 고등학교 동기인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을 한 것에 대해선 후회가 없습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64)씨가 7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중견연극인 창작집단의 신작 ‘바냐 아저씨’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연극계 검열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공개석상에서 그가 이 문제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이씨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창작기금 지원사업 희곡 분야 공모에서 ‘꽃을 바치는 시간’으로 100점을 맞아 1위를 기록하고도 탈락됐다. 당시 박근형도 전작 ‘개구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지원사업에서 배제됐다. 두 거장의 탈락 소식에 연극계에서는 검열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이씨는 “요즘 안팎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괴롭다. 예전엔 뭔가 계획한 일들을 그럭저럭 진행해 왔는데 요즘엔 잘 되는 것이 별로 없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어 “이윤택이란 사람이 평생을 쌓아온 예술적 성과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많이 해쳐먹었다고들 얘기하는 걸 들었다. 참 씁쓸하기 짝이 없다”며 “그렇지 않아도 후배들에게 극단을 맡기고 슬슬 물러나려고 했다. 정말 그때가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있는 그는 그동안 숱한 수작을 발표해 온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1986년 설립된 연희단거리패는 30년간 서울 게릴라극장, 밀양 연극촌, 부산 가마골소극장, 김해 도요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할 정도로 외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연희단거리패가 만드는 작품과 축제에 관객이 몰리면서 지자체가 앞 다퉈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이후 지자체나 예술위 등의 지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엔 부산 기장군이 지은 아동·청소년극 전문극장 ‘안데르센 극장’의 운영을 위탁받았지만 개관 한 달 여 만에 중단됐다. 기장군 의회가 “특정극단에 극장을 장기 위탁하는 것은 특혜”라며 예산을 삭감한 탓이다.

이씨는 “나는 연극계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이제는 연극계에 돌려줘야 할 때”라며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이 줄더라도 내 힘으로 소극장에서 해보려고 한다. 우선 7월에 부산 가마골소극장을 다시 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극단 설립 30주년을 맞아 그는 2월 서울 게릴라극장에서 연극 ‘방바닥 긁는 남자’를 시작으로 기념 공연 릴레이를 이어간다. ‘꽃을 바치는 시간’은 11월에 공연할 계획이다. 그는 “올해 예술위 지원사업에 다시 신청하려 한다. 또 떨어져도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장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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