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대북정책] ‘대화와 압박’ 사실상 실패… 새판짜기 불가피

입력 2016-01-08 04:00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일관되게 추진해 왔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흔들리고 있다. 남북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핵 포기와 맞물려 대규모 지원을 한다는 야심찬 구상이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다시 한번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와 압박의 투트랙(two-track)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놓는다”는 원칙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한반도는 물론 국제 안보질서에 다시 한번 심대한 위협을 주는 핵실험을 함으로써 이제 박근혜정부의 대북 기조 역시 재검토 대상이 됐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3단계로 이뤄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비핵화 여부와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 문화협력 등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쌓은 뒤 비핵화 진전에 따라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최종단계에선 북한 내 인프라 구축 등 대규모 지원을 하는 개념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이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확장적 개념인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연계해 정부의 대외정책 틀을 마련했다. 청와대는 7일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되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할 것”이라며 “이는 유연할 땐 유연하고 도발에는 더 강력히 대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이산가족 상봉 등을 빼면 3년 내내 여전히 진전과 퇴행 등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특히 6자회담이라는 북핵 협의 틀이 장기 공전하는 사이 북한은 박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3년 2월에 이어 3년 뒤 다시 핵실험 도발에 나선 상태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핵실험에서 보듯 북한엔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게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가동에도 불구하고 북한 권부는 ‘핵 포기는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또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역시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 만큼 북한의 비핵화 단계별로 신뢰구축, 경제협력, 대규모 지원 등을 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역시 앞으로 그 궤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핵 능력 고도화는 물론 북한 권부의 핵 개발 의지가 분명히 확인된 이상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응 역시 근본적으로 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안보 전문가는 “북한은 이번에도 핵실험의 전제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내걸었다”며 “핵 문제는 미국과 풀겠다는 것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나 기조가 북한엔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정부는 기존 1∼3차의 핵실험과 4차 핵실험을 둘러싼 여러 상황 평가 등을 통해 대북정책 기조를 새로 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도 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핵 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의 성격이 변화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을 더욱 옥죄는 전방위 추가 제재에 나선다면 ‘원칙과 신뢰’에 기반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연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다만 이 경우 3년간 이행돼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정치적 부담도 함께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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