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0, 7, 30, 24, 28, 3:30. 첫 목회지를 설명할 수 있는 숫자들이다. 마을의 총 어린이 숫자이자 우리 교회의 어린이 수는 3명, 장년 수는 10여명, 사례비는 한 달에 7만원, 섬 중턱에 있던 우리 교회로부터 섬 건너편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였다.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출발해 뱃길이 무탈할 경우에 3시간30분 걸리는 소이작도에서의 작고 소박한 목회가 우리의 첫걸음이었다. 나와 아내의 나이 각각 28살과 24살.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섬은 식수가 귀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가량 제한 급수가 이뤄졌다. 교회는 중턱에 위치했기 때문에 방파제 근처의 아랫말에서 물을 모두 받은 후에 30분 정도 식수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비축한 소중한 식수는 말 그대로 음용수, 밥물, 아침저녁 ‘고양이 세수’에 사용됐다. 설거지와 청소에는 쌀 씻은 물과 세숫물을 모아서 재활용하거나 빗물을 받아 사용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에, 비천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임마누엘의 은총을 베푸심이 기독교의 신비인데 섬 생활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는 천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이 양은 도시락에 따뜻한 쌀밥과 반찬 한두 가지를 수북이 담아오셨다. 신혼의 내 아내가 밥을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는지, 물이 귀한 것에 대한 배려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매일 아침 집사님은 도시락을 사택 앞에 살며시 놓고 가셨다. 배달된 것은 밥만이 아니었다.
섬의 식수는 비릿한 바다 맛이 난다. 우리 섬에는 해군기지가 있었다. 교회에 출석하는 해군 중위는 우리를 위해 산 속에 있는 작은 약수터에서 샘물을 떠다가 “깨끗한 물이니 마음 놓고 드셔도 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문 앞에 놓고 가곤 했다. 우리는 그 밥을 먹고 물을 마실 때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교우들의 깊은 사랑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본인들도 넉넉하지 않은 양식을 나누어 밥을 짓는 마음, 새벽기도 후에 산길을 걸어가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옹달샘 곁에서 새벽이슬을 맞았을 해군 중위의 섬김, 사택 앞까지 천진한 웃음으로 한걸음에 달려왔을 그들의 따스하고 보배로운 마음들을 느끼며 행복했던 곳이 바로 우리의 첫 목회지 소이작도였다.
목회를 시작하며 아내와 함께 몇 가지 결심을 했었다. 그중 하나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주시는 것으로만 먹고 입는다’였다. 가장으로서 누군가의 물질적 도움이 절실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목회 초년병 시절의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의 결심이 퇴색할라치면 우리는 소이작도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억하곤 한다.
요즘 한국 청년의 모습을 묘사한 말들. ‘88만원 세대’ ‘3포 세대’ ‘장미족’ ‘청년실신’ ‘미생’ 등은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밥 한 끼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세대다.
현재 내가 사역하는 열림교회는 홍대 근처에 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홍대 인근의 청년들을 위해 밥 한 끼를 제공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아무 이유와 설명 없이 그저 그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소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밥을 나누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인선 목사(서울 마포 열림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마포지방 감리사 △국민일보 목회자포럼 운영위원 △극동방송 ‘희망칼럼’ 진행
[따뜻한 밥 한 끼-이인선] 첫 목회 소이작島의 양은 도시락
입력 2016-01-07 18:20 수정 2016-01-21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