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폭스바겐코리아는 4517대의 판매 실적을 올려 수입차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10월 판매고가 월평균 판매량 3000여대의 3분의 1까지 떨어지자 최대 1800만원 할인, 최장 60개월 무이자 할부라는 대대적인 할인 공세를 편 덕분이었다.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해 대기오염을 가중시킨 기업에 대해 유독 한국 소비자만 지갑을 활짝 열었다는 점에서 호갱’(호구+고객)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11월 미국과 일본에서도 폭스바겐의 대대적 판촉 공세가 펼쳐졌지만 판매고는 각각 24.7%, 31.8% 감소했다.
같은 달 미국과 캐나다의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차종 소유주들에게 1000달러 상당의 상품권과 바우처가 제공됐다. 7일 환경부에 따르면 폭스바겐코리아는 2개 브랜드 28개 차종 12만5000여대의 리콜 계획을 제출했지만 소비자 보상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북미 고객과는 명백한 차별대우다.
소비자만 탓할 일도 아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4일 폭스바겐을 상대로 환경오염의 책임을 물어 최대 약 108조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현행법상 환경부가 부과한 141억원의 과징금 외에 형사처벌이나 민사소송이 불가능하거나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자동차 제조업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체계, 경유차에 유독 더 허술한 국내 규제가 국내 소비자 의식을 둔감하게 만든 측면도 크다.
환경보호기금의 수석 경제학자 거노트 와그너는 자동차 범퍼에 ‘외부효과를 내재화하자’라고 쓴 스티커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풀어 쓰자면 ‘나는 여러분의 건강을 해치므로 어떻게든 값을 치를 게요’쯤 된다. 여러 가지 부정적 외부효과를 미치는 개인 차를 운행할 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비자 주권을 포기하고 이기심만 발동하는 ‘호갱님’들이 대기오염을 줄이지만, 차의 연비를 낮추는 공익적 리콜에 얼마나 응할지도 걱정이 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폭스바겐의 ‘호갱님’들
입력 2016-01-07 17:53